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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져니 Dec 02. 2017

이토록 고혹적인 다큐멘터리

02 <Chef's Table> S2E3 "Dominique Crenn"

관심 둘,

#어린시절 #나(정체성) #스토리텔링


다큐멘터리에 대한 내 이미지의 근원으로 파고들어가면 '6시 내고향'이 있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기다림'과 '초조함'의 결합에서 오는 그 감정. 내게는 '6시 내고향'이 그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지금까지도 '6시 내고향'을 보지 못한다.



@kbs.co.kr


황혼녘 석양과 공허함, 그리고 죽음의 이미지


하루 중 대부분을 놀이방에서 보내던 어린시절, 나는 거의 늘 마지막에 집에 가던 아이었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5시 무렵에 퇴근하셨기 때문에 마지막이라고 해도 그렇게 늦은 시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간혹 회식이라던가 회의라던가 평소 퇴근시간보다 늦어지는 날이 생길 때가 있었고, 당시 또래 아이보다는 침착한 (척을 하였던) 나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놀이방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곤 했다. 그치만 당시 6살이었던 나에게 그 기다림의 마지노선은 그리 길지 않았고 그것은 6시, 바로 '6시 내고향'이 시작하는 그 시간이었다.


텅 빈 고요함에서 오는 공허함과 불안함, 외로움 비슷한 감정들을 당시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지 그 때 내 앞에 항상 '6시 내고향'이 있었을 뿐이다. 6시가 넘어가면 어김없이 방송은 시작되었고, 그 때가 되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이 지극하신 놀이방 선생님의 눈도 조금은 슬퍼보였다.


Seoul, 2017 @docu-journey


짙은 분홍 느낌의 푸른색


정확히 6시 내고향이 다큐멘터리는 아니었지만 내 기억 속 방송 다큐멘터리들의 이미지는 늘 그것과 비슷했다. 시골 풍경, 푸르른 산과 드넓은 바다, 구수한 시골 밥상과 함께 정다운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나는 그것에서 이상하게도 죽음과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곤 했다. 저녁 노을이 지던 무렵의 쓸쓸한 시간대와 나의 초조함이 겹쳐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TV 속 화면들이 나와 너무 동떨어진 세계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푸르른 자연들로 둘러쌓여있던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겐 황혼녘 석양의 느낌으로 남아있다.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개념을 접하게 된 아이가 그것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것처럼, 이런 감정 앞에서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 그런 어린아이처럼 굴곤 했다.


어찌되었던,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나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미지는 교환학생 시절 나에게 다큐멘터리를 추천해 준 한 덴마크 친구 덕분에 깨지게 된다(이전화, 02<Cowspiracy>). 그리고 그 때 시작된 나의 다큐멘터리로의 여정에  호기심을 넘어서 경이로움을 더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Netflix Original 다큐멘터리 시리즈, <Chef's Table>이었다.

 



Chef's Table, @Netflix Facebook


우아하고 고혹적인


나에게 있어 다큐멘터리란 '6시 내고향'과 비슷한 이미지였기 때문에 항상 타겟 오디언스는 50대 중후반 이후인 것들이었다.  예능, 드라마 프로그램들에 지쳐갈 무렵 (역시 이전화 02 <Cowspiracy> ), 이것들 외의 관심 영상을 찾아 헤매던 나는 예능/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아닌 다른 장르들에 20대 이하층이 얼마나 소외되어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주 소비자층이 아닌 20대는 예능과 드라마 또한 주 타겟이 아니지만...)

 

50대 중후반 이후 층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20대 이하 층이 완벽하게 소외되어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을 뿐이다. 왜 보다 젊은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는 없을까.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나 우리의 취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거나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말하기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 않아 거부감이 들었을 확률이 크다.


이러한 생각들이 들 무렵, 넷플릭스에서 마주하게 된 <Chef's Table> 시리즈는 나에게 다큐멘터리 앞에는 절대로 붙일 일이 없을 것 같던 형용사, "고혹적이다"라는 말을 다큐멘터리 앞에 붙이게 만들었다.


Chef's Table S2E2 "Dominique Crenn" @Netflix


백조를 닮은 다큐멘터리


무엇인가 너무나도 좋은 것을 볼 때면 늘 두 손을 꽉 마주잡고 미간을 뒤트는 모습을 하게 된다. 당시 내가 처음으로 클릭했던 에피소드, 시즌 2의 2편. Dominique Crenn 편을 볼 때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얼핏 보았던 설명에선 셰프들과 그의 요리에 관한 50분 내외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인터뷰들의 단순 나열과 그들의 작업 환경을 보여주는 그런 기존의 다큐멘터리 문법을 떠올리며 영상을 클릭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특유의 고즈넉함으로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갑자기 타이틀 시퀀스에서 화려한 현의 선율과 함께 비발디의 사계를 휘몰아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고즈넉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우아한 영상미와 그것을 배가시키는 음악은 당연하다는 듯 뒤따라왔다. 쉴새없이 바쁜 영상의 움직임, 배경 음악의 선율들 속에서 다큐멘터리의 고즈넉한 이야기 방식을 이어가는 영상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백조의 수면 위 우아함 속 쉴 새없는 발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Chef's Table S2E2 "Dominique Crenn" @Netflix


어린시절과 현재의 결합 속에서 나오는 그녀의 요리들, 그리고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과 함께

꿈과 현실을 통해 그것을 찾아가는 그녀의 삶. 그녀가 그녀의 레스토랑 손님들을 그녀의 집에 초대한 사람들이이라 생각하고, 그녀의 요리의 목적을 '사람들과의 교류'로 삼는 것처럼, 본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영상미와 선율들의 조합과 함께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흠뻑 그들의 삶이 이야기에 빠져 그들의 삶과 교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압축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 이야기, 영혼


I'm not serving a menu. I'm serving the story, I'm serving my soul

Chef's Table S2E2 "Dominique Crenn" @Netflix



그녀의 메뉴판은 시로 등장하기도, 그녀의 요리는 그녀의 기억 속 한 장면처럼 장식되기도 한다. 때문에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는 그녀의 요리.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이것들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녀는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그녀의 이야기, 그녀의 영혼을 그것에 담아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들이 음식을 먹는 또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녹아 함께 살아 움직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음식을 통해 이야기를 던지고 대화를 이끌어내는 그녀의 기억들은 현재와 결합하여 숨을 쉰다.


"I'm not serving a menu, I'm serving my story. I'm serving my soul"  
(전 요리를 전달하는게 아니에요. 나는 내 이야기를, 내 영혼을 전달합니다.)

-Dominique Crenn (Chef's Table)


압축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 다큐멘터리


카드뉴스와 2분 이내의 압축된 영상들에 익숙한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과연 최소 50분, 길게는 2시간도 훌쩍 넘기는 길이의 다큐멘터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Chef's Table S2E2 "Dominique Crenn" @Netflix


이는 그녀가 메뉴 설명을 시처럼 길게 적는 이유, 그녀의 접시를 그녀의 추억 속 한 장면처럼 재현해내는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와도 닮아있다. 사람들은 요리 이름과 재료로 구성된 간단한 메뉴판을 통해 주문하기를 원하고 음식이 주는 먹기 전과 먹는 중간의 짧고도 강렬한 순간만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미각, 시각, 후각적 차원의 경험 제공이 아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정서"며 "경험"이다.


정서와 경험

다시 다큐멘터리로 돌아와서, 정보가 미어 터지는 세상 속 우리가 굳이 그 정보를 영상을 통해 얻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분명 정서와 경험이 주는 힘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 시간의 힘을 믿는 고리타분한 사람 중 한 명으로써, 나는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긴 시간과 그 긴 시간 동안 우리가 영상을 통해 겪게 되는 것들은, 분명 2분 내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정서적 경험은 오히려 짧고 강렬한 압축적인 영상에서 더 효과적으로 겪을 수 있다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의 존재 이유가 하나 더 등장한다. '자발적 관심'이다.


Chef's Table S2E2 "Dominique Crenn" @Netflix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마치 내가 그녀의 식당에서 그녀와 나란히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얻었다. 생각해보자. 지금 내 눈 앞에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이 앉아있고, 나는 지금 그 사람의 어린 시절과 현재에 있기 까지 일해 온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50분이 과연 긴 시간일까? 1시간도, 2시간도 더 앉아 듣고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내 눈 앞에선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직접 재현해서 보여주기까지 하고 있다. 단순히 그녀의 이야기 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 그녀의 어린 시절 사진, 고향의 풍경, 그녀가 일하는 모습들-을 아름다운 영상과 선율로 내 눈 앞에서 보여준다.


Chef's Table S2E2 "Dominique Crenn" @Netflix


절대로 압축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정서와 경험, 그리고 내가 대상에게 갖는 관심이 그것이 그러하다.  그리고 그것의 총체적 종합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전율 또한 존재한다.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결과물들의 나열이 아닌, 그 모든 것들이 담긴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정서이고, 경험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그녀의 목소리, 말투, 표정, 그리고 그것을 담는 고혹적인 영상과 음악의 향연을 경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큐멘터리의 이유가 당신 앞에 놓여져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 영혼과 함께.


I've always been searching to discover who I am. I'm still doing it.
저는 늘 저 자신을 찾아 헤매왔어요. 지금도 그러합니다.

- Dominique Crenn (Chef's Table S2E3)



* [다큐저니] 관심 둘

(#어린시절 #나 #스토리텔링) 추천작


Netflix <Chef's Table S2E3 "Dominique Crenn">

Chef's Table S2E2 "Dominique Crenn"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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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03 <브라더스 Broth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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