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이 있을까?
1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면, 겹치는 부분과 겹치지 않는 부분이 생각난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었던 걸까? 종착역이라는 게, 마지막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이제 의문문은 그만 쓰자.
벌써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한 지 1년이 되었다. 여전히 처방약을 먹고 있고, 아직도 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런 점이 병식을 가지는데, 문제가 생길까 겁이 난다. 그나마 내가 나은 점은 병식이 있다는 거였다.
가족들은 나의 건강을 걱정한다. 아프지 않기를, 또다시 입원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을 바란다. 나는 약을 먹지 않기를 바라고,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고 싶다. 일을 해보고 싶다. 물론, 그것에 맞는 급여도 원한다. 워라벨까진 아니더라도 꾸준한 수입이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
모두 그렇게 사니까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은 다르고, 눈높이도 다 다르다. 나는 워커홀릭까진 아니더라도 일을 하면서 좀 더 사회성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것에 대한 목마름이 강하다. 일을 하다가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고, 차 한잔하면서 회사 주변을 걷는 상상. 나도 그런 상상을 가끔 한다. 하지만 지금은 참 멀리 있다고 느껴진다.
최근에 아르바이트에서 까임을 당하고, 나는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아무렴 뭐 어쩌라고. 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좋은 곳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인생 사는 거 정말 어려운데, 이 정도에 무너지지 말자는 생각도 했다. 사회생활이 그렇지 않나? 나는 아직 호되게 덜 당한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기회는 잡으면 된다고.
그런데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 몸이 피곤하고 아프고. 지금의 내 나이는 운동으로 노력만 해서는 안 되는 나이다. 유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생활습관병일 수도 있고. 태어났을 때의 몸과는 다르게 환경과 노화를 이겨내지 못할 수 있는 나이. 나이 체감이 확실히 올라왔다. 그렇게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나는 얼마나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얼마나 걸어 나가서 되돌아올 수 있을까? 등산하면서 배운 것은 그거다. 걸어 올라간 만큼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 그런 안정성을 체화시키는 활동을 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 했는데, 요즘 그것이 계속 생각난다.
나는 얼마나 걸어갈 수 있을까? 얼마나 내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답을 얻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