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이지 않음은 살아있음이 아니다.

by 반쯤리뷰

멋있는 글을 봤다. 필력도 좋고 내용도 희망적이며 글도 일취월장이다. 하지만 생각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댓글로 생각을 표현해볼까도 싶었지만 뻗대는 것이 아닐까 싶어 글로나마 표현해 본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은데 인간과 기계가 경쟁을 하면 기계가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계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일정한 결과를 제시하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기계와의 경쟁에서 항상 밀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비슷한데, 침착하게 일처리를 하여 항상 같은 결과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고 감정적이며 동요하는 인간이 있다.

앞서 말했듯 차분한 인간은 항상 일정한 결과를 제시하지만 감정적인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침착한 인간과 차분한 인간이 경쟁한다면 차분한 인간이 밀리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침착하여 동요하지 않고 항상 일정한 감정을 유지하며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글이었다.

창의력2.jpg 우리는 기계와 같은 인간이 돼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며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인간은 과연 기계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가? 혹은 기계가 인간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항상 일정한 능력을 보이기 때문인가?

교육학을 공부하는 관점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현대 사회는 아이디어 전쟁이다. 앞서 말한 기계와 같은 것을 활용하여 아이디어만 있으면 실현시킬 수 있는 환경은 넘쳐난다.

이곳 브런치스토리 또한 개개인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환경이 아닌가.


기계와 같은 능력은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다. 같은 침착한-일정한 포퍼먼스를 보여주는- 사람은 언제라도 같은 침착한 인간이나 기계에 대체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세상을 바꾸는 능력은 침착함이 아니라 창의성에 기반한다.

발전은 반복이 아닌 움직임과 변화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성공과 성취의 시작점은 창의성에서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 또한 무던하며 침착한 무언가가 아닌 불같이 변화하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그것이어야 한다.


만약 기계가 인간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기계가 인간의 침착함을 배워서가 아닌 변화하는 감정과 창의력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창의력1.jpg 기계는 인간의 감정을 배우려 한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조금 더 본질적인 생각이다.

감정적이지 않고 침착한 삶은 살아있는 인생인가?

사랑하지 않고 기계처럼 사는 삶에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톨스토이의 단편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생각났다.

톨스토이는 그의 저서를 통해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라는 생각을 전했다.

무엇으로1.jpg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나 또한 그렇게 느낀다. 기독교도, 개신교도. 불교도, 천도교도 모두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

아내나 애인, 가족과 같은 좁은 범위에서의 사랑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같이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위해서 산다.

정의, 질서, 진리, 이상과 같이 관념을 사랑하며 살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위해서 산다. 사랑하기 위해 산다.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간다.


사랑이란 뜨겁고도 더없이 인간적인 것이다.

기계와 같이 일정한 감정과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산다면 이는 사랑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주변에 휩쓸려 동요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워 눈물을 홈칠 수도 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일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들이 인간적인 모습인 것이다.

주변에 휩쓸리는 갈대 같은 모습들이 우리들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한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일에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없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산다. 우리는 흔들리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처음의 글을 요약하면 기계와 같은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성취를 이루자는 뜻임을 안다.


하지만 이러한 말은 자칫 사랑의 의미를 퇴색시킬 위험이 있다.

이러한 말은 인간성을 퇴색시킬 위험이 있다.

이러한 말은 삶의 의미를 퇴색시킬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주장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반박했던 것이다.

하나는 기계와 다른 흔들리며 감정적인 인간성이 인류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흔들리는 인간성이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원 글에 글쓴이가 이 글을 본다면, 또한 의문점이나 내 부족한 글에 놓친 부분을 찾아준다면 댓글로나마 지적해 주길 바란다. 모두 자신의 부족한 글 읽어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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