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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씹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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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Nov 09. 2015

참을 수 없는 정적의 어색함

나는 왜 '어색한 정적'을 잘 넘기지 못하나

A와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을까.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 A를 마지막으로 본 날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몇 가지 장면들을 간신히 떠올려본다. 대략 4년 만에 만나는 것 같다. 실상은 2년이었다. A를 만나 함께 세어보면서 알게 됐다. 생각보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A와 함께한 몇몇 장면들은 기억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사실, 그만큼 우리는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다.



2년 만에 만난 친구


어지간히 친밀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나는 대화 사이사이 찾아오는 어색한 정적을 좀처럼 잘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고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다. 오히려  말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타입이다. 그럼에도 나는 충분히 친하지 않은 누군가와 단 둘이 나누는 대화에서,  중간중간 찾아오는 정적을 참지 못한다.



2년 만에 만난 A는 "넌 변한 게 하나도 없다"며 인사를 건넸다. A도 마찬가지로 거의 변한 게 없었다. 서로의 근황(이라고 해봐야 회사 이야기)을 한바탕 나눈 후에 이윽고 '어색한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앞에 놓인 음식을 먹으며 A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길 기다렸다. 하지만 A는 좀처럼 정적을 깨지 않았다.


다급하게 묻는 B, C, D의 안부


정적이 길어지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A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거리를 속으로 부단히 찾아봤지만,    없었다. 이때 A와 내가 함께 알고 있는 B, C, D가 떠올랐다. "아 최근에 만나본 적 있어?". 정적은 이렇게 깨졌고, (자리에 있지도 않은)세 사람을 넘나드는 대화가 이어졌다. "요즘 어떻다더라" 수준의 안부를 공유했다.


돌아가는 길이 허탈했다. 2년 만에 만난 친구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가 다니고 있는 회사, 아직 싱글이라는 사실,  같이 알고 있는 세 사람의 근황. "뭐하자고 만난 거야 대체" 버스에 털석 앉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겉도는 대화만 잔뜩 나눴다는 생각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대화를  글처럼 하고 싶다


언젠가 한 번, 말을 글처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 몇 시간은 묵혀두고 쓰는  글처럼, 말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경우는 그 편이 더 담백하게 나온다. 실제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정말 알고 싶은 것, 필요한 것, 의미 있는 것들로 대화를 채우는 사람들이다. 서로 간의 친밀도와는 무관하다. 그들은 어색한 정적을 잘 견딘다. 아니, 정적을 어색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즐겁고, 애착이 간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덜 친밀한)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나보다 상대에 초점을 맞춰왔다. 식사 메뉴를 고를 때도, 장소를 잡을 때도, 나보다는 상대가 편한 쪽으로 결정해왔다. 정적을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 '상대가 불편 해하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과 다를 것 없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관계를 맺는 두 사람의 시야를 탁하게 한다는데 있다. 서로의 진심을, 매력을, 취향을 잘 드러나지 못하게 한다.



친밀해진 사람들. 이들과 공유하는 정적은 어색하지 않다. 말이 끊긴 고요함 안에서, 잠시 샛길로 빠져나가 골똘히 뭔가를 보고 있는 이들을 본다. 자기 안으로 향한 이들의 눈을 본다. 황홀한 구경이다. 덜 친밀한 사람들에게도 이런 황홀함을 느끼고 싶다. 어색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편을 겁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보여주고 싶다. 스톱워치로 정적을 참는 훈련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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