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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씹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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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Apr 01. 2016

당신들의 9AM-6PM

하루 중 가장 밝지만, 서로에겐 가장 어두운

환절기 감기에 눈물 콧물 다 쏟아내던 4월. 초등학생이던 나는 오전 조퇴를 했다. 10시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지만, 그 날 이른 하굣길은 어렸던 내게도 퍽 낯설었다. 늘 정문 앞을 지키던 솜사탕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놀이터도 아이들 소리 하나 없이 멈춰있었다. 바람소리가 잘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길가에 개나리며 철쭉도 매일 보던 것과는 색이 달랐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종종했다. 대부분은 탈이 나서 조퇴를 하거나, 집안 경조사로 학교 수업을 쉬게 된 날들이었다. 한산한 공원길과 텅 빈 아파트 주차장 풍경이, 심지어 내 방의 분위기도 늘 보던 것과는 달랐다. 교실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있었지만, 이런 낯섦이 좋았다. 친구의 몰랐던 모습을 훔쳐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었다. 물론 자주 느낄 순 없었다. 그러자면 자주 아파야 했으므로.


고맙게도(?)


5년째 뉴스로 밥을 벌어먹고 있다. 이 일의 속성이 그렇다. 사건사고는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밤낮이 따로 없고, 평일과 주말이 따로 없다. 어떤 날은 새벽에 출근해 오후 3시면 퇴근을 하고, 어떤 날은 오후에 출근해 새벽 1시가 넘어야 퇴근을 한다. 한 달에 3주는 주말에도 일을 하고, 대신 평일에 쉰다.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라 몸과 마음이 쉽게 구겨지곤 한다.


하지만 고맙게도(?) 조퇴하던 날의 그 낯섦을 느낄 기회는 많다. 직장인들이 모두 저마다의 건물 안으로 들어간, 평일 한 낮의 공원에 머무를 수 있다. 가끔은 햇살이 쏟아지는 텅 빈 버스를 타고, 유치원생들이 하원 하는 모습을 본다. 늘 지쳐 보이던 편의점 야간 알바생의 쌩썡한 출근 모습도, 문자로만 만나던 쿠팡맨의 날렵한 몸짓도 본다. 9AM-6PM 정규 근무가 있는 날에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서로에겐 어두운 시간


학생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런 낯선 풍경이 반갑다. 동네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이 버스가 종일 붐비는 게 아니었구나, 이 사람들은 이렇게 일하고 있었구나, 하며 매번 감탄하게 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살아갈 힘이 보태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정해진 시간의 등하교나 출퇴근에 매몰돼, 딱딱하게 경직된 몸과 마음이 아아! 각성하게 된다.


평일 9AM-6PM은 하루 중 가장 밝지만, 우리 서로에게는 가장 어두운 시간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이 어쩔도리없이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람들, 한정된 풍경들 안에만 머물게 되는 시간. 그렇지만 쉬이 깨고 나오기가 어려운 시간. 그래서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공간 곁에 머물며 그것들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할 수 없는 시간. 그런 안타까운 시간인 것 같다.


당신들의 9AM-6PM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은 그 가짓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다. 특히 늦여름~초가을 퇴근 무렵의 해가 지는 하늘은 유난하다. 6시와 6시 10분이 다르다. 완전한 일몰 직전은 더 변화무쌍하다. 1분 1분이 새로워 퇴근길에 차를 세우고 도로 위에서 사진 찍고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른 계절의 퇴근길에 차를 세운 기억은 없다. 그렇다고 그 계절들의 하늘이 덜 다채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휴가지에서 봤던 겨울이나 봄의 일몰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만 그 계절, 가장 아름다운 하늘은 오전 아홉 시 이전이나 오후 여섯 시 이후엔 만나보기 어려웠을 거라 짐작한다.


늦여름의 퇴근길 하늘같은, 계절이나 풍경의 생동하는 모습을 좀 더 자주 보며 살고 싶다. 그리고 그보다도, 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 가장 밝은 오전 아홉 시와 오후 여섯 시 사이에, 한 없는 공간에서, 한 없는 모습으로 만나고 싶다. 이건 정말 어려운 꿈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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