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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씹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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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Apr 14. 2016

진짜 손해는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들

회사 테라스에서 우연히 두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7Km쯤 되는 거리를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게 이득인지를 두고 오가던 대화였다. 남자 A는 그동안 이 거리를 버스로 다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던, 한 눈에 봐도 깐깐해 보이는 남자 B는 기름값, 차량의 감가상각, 시간을 근거로 자가용이 이득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어서 옆에서 듣던 나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손익 계산에 능한 사람 같았다.


A는 언뜻 봐도 그런 쪽으로는 무뎌보였다. 같은 타입인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에.. 버스 타고 다녀도 별로 불편한 게 없어요"를 반복하던 그는 결국 "그러네요.. 차를 가지고 다닐까 봐요" 하며 수긍하는 듯했다. B의 설명이 무척이나 합리적이었음에도 A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기색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미쳐 다 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2년 전에 작은 차를 샀다. 자주 다니던 곳들이 대중교통으로는 다소 오래 걸렸다. 두 남자의 대화처럼, 출퇴근 비용을 생각하면 이익이라는 계산도 했다. 이 밖에도 만들어낸 이유가 많았지만, 사실 그저 차를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차 구입을 미루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던 터라, 계약서를 쓰기 직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이미 지나는 차만 봐도 심장이 뛰는 지경이어서 뜯어말릴수록 간절해졌다.


차를 갖게 된 이후, 일상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 1시간 걸리던 출근길이 25분으로 줄었다. 자연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늦춰졌다. 이전보다 더 늦게 출발해 더 빨리 도착했다. 외출할 때 늘 필요한 짐만 백팩에 추리던 습관도 사라졌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었다. 물론 비용은 늘었다. 그러나 이 편의와 시간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역시 이익이라는 생각을 했다.


빠르지만


1년 정도는 차를 정말 열심히 끌고 다녔다. 평일부터 주말까지 거의 매일 운전을 했다. 차를 끌고 다니면서 뭔가 잃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느 날 밤 한강변 도로 위에서였다.



나는 한강의 야경을 좋아한다. 특히 마포에서 여의도를 바라보는 밤 풍경을 좋아하는데, 양화대교, 서강대교, 마포대교에서 보이는 마천루의 모습이 다 다르게 아름답다. 그런 이유로 밤에 강변북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면 늘 오른쪽 창가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곤 했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으면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거의 매주 그 길을 달렸지만, 2~3초씩 끊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마저도 위험해서 큰 사고를 낼 뻔했다. 분명 예전보다 빨랐지만, 옆에 있는 풍경은 전부 그냥 흘려보내야 했다.


운전하며 볼 수 없는 건 한강의 야경뿐만이 아니었다. 풍광 좋은 곳엘 놀러 가더라도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오로지 정면만 바라봐야 했다. 돌아와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곤 고속도로와 다른 차들의 궁둥이, 그리고 도착지의 풍경뿐이었다. 옆동네 식당엘 가더라도 차를 가지고 나서면 길 사이사이 풍경들, 호기심이 동하는 가게들을 모두 놓쳤다. 운전에는 오직 '출발지-도착지'만 있었다. 경유하는 풍경들은 허락되지 않았다. 오로지 정면만, 그마저도 아주 빠르게만 가능했다.



느리지만


열심히 차를 끌고 다니던 때에도 술 약속이 있는 날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오랜만에 타는 지하철에서는 늘 좋은 느낌이 들었는데, 대부분은 함께 탄 이들로부터 오는 것들이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읽고 있는 책의 제목, 통화하는 내용, 표정 같은 것들이 마음에 끼얹어졌다. 가끔은 타고 내리는 이들과도, 반대편 선로에 마침 멈춰 선 지하철 속 아가씨와도 시선이 맞닿았다. 그럴 때마다 이들의 모습에 내 과거, 주변, 걱정과 고민, 엄마, 아버지, 쓰고 싶은 글까지 온갖 것들이 엮여 떠올랐다. 꽉 차있는, 생동하는 기분이었다.



버스에서는 눈이 외부로 향했다. 자주 멈추고, 노선을 따라 멀리 돌아갔지만, 그 덕에 생소한 동네를 알고, 한 곳에 시선을 길게 둘 수 있었다. 한강 다리 위를 지나며 1분 넘는 시간 동안 노을을 구경하는 게 가능했다. 대단할 건 없지만, 운전대를 잡은 채로는 가질 수 없는 경험이고, 감정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진짜 손해는


내 남은 생이 앞으로 50년, 많으면 60년쯤 있다고 치면, 매일 운전대를 잡는 일이 큰 손해라는 생각이든다. 결국 남는 건 절약한 돈이나 목적지에 빨리 도착했던 기억이 아니라, 시선이 닿은 장소나 사람들, 그것들로부터 생겨난 우연한 경험 들일 것 같다. 물론, 매일 운전을 한다고 이런 기회가 사라진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기회의 총량은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자가용으로 출근한 날 스친 사람들의 수와, 지하철로 출근한 날 스친 사람들의 수를 비교해보면 그렇다.


어쩌면 회사 테라스에서 본 남자 A는 이런 이유로 버스를 고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뚜렷하게 손익이 드러나는 숫자들 앞에서, 환산하기 어려운 감정적이고 경험적인 손해들을 고집하기가, 그리고 설명하기가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나도 늘 그렇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즉각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은 쉽게 무시하게 된다. 더하고 빼기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처럼, 그때 그때 내게 더 중요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손가락을 꼽아 따져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매일 아침 차 키에 손이 가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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