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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씹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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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Apr 05. 2016

미움의 속성

온당치 않게 누군가를 미워한 날들

무선 공유기가 또 먹통이다. 패스워드를 입력해도 연결 화면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램프에 불은 잘 들어온다. 여전히 요란스럽게 깜빡인다. 랜선을 뽑았다 다시 끼워본다. 나아지질 않는다. 전원을 껐다 다시 켜보지만 마찬가지다. 어찌할 바를 몰라 공유기를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아픈 사람 이마를 짚듯 손을 올려본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공유기는 뜨거웠다. 이러다 폭발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늘 이렇게 뜨거웠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제조업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각종 장애에 대처하는 방법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내게 해당되는 글을 눌렀다. '공유기와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10초 이상 경과한 후, 공유기부터 다시 전원을 켜세요'. 정말?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2014년 봄, 아버지가 큰 사고를 당하셨다. 교통사고였다. 가깝게 지내던 동네 친구분의 부탁으로 어딘가에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일이 터졌다. 친구분이 운전 중에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옆에 타고 계시던 아버지가 차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아버지는 한동안 의식이 없었고, 중환자실에서 여러 번 큰 고비를 넘겼다.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의사의 말을 그때 현실에서 전해 들었다. '하늘이 도왔습니다'.



미움과 분노


온 집안이 난리였다. 평화롭던 가족의 일상이 무너졌다. 나는 분노했다. 분노는 아버지를 불러내 사고로 이끈 친구분을 향했다. 사고가 있기 전에도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동네에서 알게 된 사이로, 약주를 자주 하시고, 종종 아버지께 이런저런 부탁을 했었다고. 그런 이유로 그 친구분에 대한 인상이 이전부터 좋지 않았었다.


중환자실 앞을 지키던 밤 그 친구분을 만났다. 사고로 찢어진 옷차림 그대로, 가슴에 깁스를 두르고 나를 찾아오셨다.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그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날을 세웠다. 쏘아붙이듯 당신 탓을 하는 내게 그는 횡설수설했다. 말이 뒤죽박죽이었고, 시선은 바닥을 향했다. 그 모습에 나는 화가 더 치밀었다. 아버지뻘 어른이었지만,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의 건강은 빠르게 호전됐다. 몸의 수치들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돌아온 후에는 일반 병실로 올라갈 수 있게 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한동안 거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가족들과 간병인이 돌아가며 아버지 옆을 지켰다. 내가 아버지 옆을 지키던 어느 날 새벽에, 아버지가 내게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그 사람 탓 아니다'.


시간


사고 이후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는 재활치료를 마쳤고, 사고 이전의 건강을 되찾으셨다. 가족의 일상도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 친구분을 향해 싹튼 내 분노와 미움도 거의 잊혀져 갔다. 한때 그 감정의 열기에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랬던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작년부터 집안에 경조사가 많았다. 두 분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누나가 더 없이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던 아버지의 친구분은, 이 모든 경조사에 찾아오셨다. 거리가 멀든 가깝든, 누구보다 먼저 얼굴을 내밀었다. 처음 다시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애써 외면했다. 두 번째엔 멀리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단 인사를 겨우 건넸다. 마지막으로 누나의 결혼식 땐 거부감 없이 '오셨구나'하며 반겼다.


친구분은 늘 우리 가족에게 미안한 표정이었다. 멋쩍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좋든 싫든 감정을 걷어내고 지나간 일을 되짚어보게 되곤 했다. 아버지가 그와 차를 타고 나갔고, 그가 운전 중에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다. 사고가 났고, 불행히도 아버지가 크게 다쳤다. 늦은 밤 병실에서 아버지가 나지막이 건넨 말처럼, 그를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미움의 속성


누군가를 미워했던 순간들이 있다. 그때를 돌아보면, 정작 내게 미움을 산 그들이 의도적으로 내게 뭔가를 잘못한 일은 없다. 대부분은 의도치 않게 감정이 틀어졌거나, 오해나 실수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이해가 다르기도 했다. 물론 때로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누군가 내게 악의를 드러내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역시 많지 않다.


그럼에도 미움은 쉽게 싹트곤 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특히 그랬던 것 같다. 가끔은 미움이라는 감정의 열기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후엔 늘 흉터가 남았다.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보다, 누군가를 탓하고 미워하는 일이 더 손쉽게 느껴졌던 건 아니었나 싶다.





문제 해결 가이드에 나온 대로 공유기와 컴퓨터의 전원을 내렸다. 10초는 어쩐지 부족할 것 같아, 넉넉하게 5분 정도 되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폭발할 기세로 뜨거웠던 공유기도 적당히 따뜻한 상태로 돌아왔다. 다시 양쪽의 전원을 올리고 랜선을 연결했다. 공유기의 파란불이 하나씩 깜빡거리더니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해진대로 설계된, 단순한 기계도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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