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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씹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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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Nov 19. 2015

기묘한 친절

원하는 만큼 친절하기의 어려움

이사를 하면 감수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단골 미용실과 이별하는 일도 그렇다. 마음에 드는 새 미용실을 찾는 일은 어렵다. 낚시에 가깝다. 바늘에 미끼를 끼워 물에 던지듯, 머리를 길러 낯선 손길에 내던져야 한다. 뭐가 걸려 올라올지는 모른다. 시원찮으면 자리를 옮겨 다시 미끼를 끼워야 한다. 3주마다 머리를 자르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건 중차대한 일이다.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3주마다 시달린다.


지난해 4월,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2년 넘게 다닌 단골 미용실이 있었지만, 이사 온 동네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집 근처에 새로운 단골 가게를 만들어야 했다. 여러 미용실을 돌아다녔다. 짧게는 한 번, 길게는 서너 번을 다녀보면서, A미용실을 단골 가게로 삼아 다니고 있다.


다 좋은데..


A미용실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여러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생김으로 머리를 다듬어줬다. 다음번 방문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골 삼기에 손색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지나치게 친절했다. 너무 깍듯한 나머지 나는 늘 몸 둘 바를 몰라했다. 가게를 나서면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있을 정도였다.


A미용실은 규모가 있는 가게다. 프런트가 따로 있고 미용사도 여럿이다. 미용사들에 딸린 견습생도 있다. 가게로 들어서면 옷을 받아주고(나는 이때부터 몸이 굳는다), 차를 내어주고, 견습생이 머리를 감겨준다. 머리를 감겨줄 때는 늘 미소를 겸한 멘트들이 따라온다. '눕혀드릴게요, 눈 가려드립니다, 목은 괜찮으시죠, 물 온도는 어떠세요, 더 헹구고 싶은 곳이 있으신가요'. 나는 어색함에 연신 '예예..' 한다. 나갈 때까지 비슷한 과정이 이어진다.


이렇다 보니 나는 3주마다 딜레마에 빠졌다. '아.. A미용실이 잘 자르는데, 가기가 부담스럽다'. 덕분에 잠시 외도도 했다. 몇주간 30대 형님이 홀로 경영하는 작은 미용실엘 다녔다. 가격이 비슷했고 마음이 불편한 경우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옆머리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등 공격적인 스타일을 추구하시는 바람에 다시 A미용실로 돌아와야 했다. 지금도 몸 둘 바를 몰라하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좋은 서비스


사람마다 수용하는 폭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이런 과잉 친절을 잘 견디지 못한다. 애써 웃으며 베풀어지는 친절도 그렇지만, 그 애씀이 몸에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 기묘한 분위기는 더 견디기 힘들다. 반면, 이런 류의 친절을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업종이나 비용과는 무관하게 복종에 가까운 무조건적인 친절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팁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런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좋은 서비스'라는 말의 정의를 '숙련된 솜씨' 정도로 이해한다. 이를테면 커피집 점원이 할 수 있는 좋은 서비스는 커피에 대한 해박한 설명이나 크레마를 두텁게 뽑아내는 것이다. 미용사라면 세심하게 잘라주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솜씨가, 음식점 점원이라면 정확하게 주문받고 늦지 않게 내어주는 능력이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 나를 밝은 미소로 맞아주고, 친절한 언어로 대해주며,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를 맞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분이 좋거나, 내가 정말 반가울때, 그들이 원하는 만큼만 자연스럽게 친절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게 '가능한' 환경이었으면 좋겠다(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편하게, 둥글게


대학을 휴학하고 캐나다에서 1년을 지냈었다. 당시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커피숍에서 10개월을 일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어느 날 외국인 동료들이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이봐 편하게 해, 뭘 그렇게 종일 억지로 웃고 있어". 한국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갈고 닦은 '무한 미소'가 무용지물이 된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동료들은 손님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일했다. 커피를 잘 뽑고 주문이 밀리지 않도록 하는데만 집중했다.


물론, 내가 일하던 커피숍에도 'Just say YES'라는 고객 중심(?) 슬로건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슬로건을 '손님은 왕'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풀어 써 보자면 '합리적인 요구는 귀찮아하지 말자' 정도가 될까. '서양이 최고'란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난 한국이 좋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 모두가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팔고 벌어먹으며 사는 이곳이 조금 더 합리적으로, 둥글게 둥글게 굴러갔으면 좋겠다.


서로가 괴롭지 않게, 미용실에 가는 게 부담스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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