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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씹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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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Mar 28. 2016

나 같은 사람의 글쓰기

나에게, 모두에게 미안합니다

지난 12월, 일주일간 해외로 출장을 다녀오게 됐다. 첫 출장인데다가 갑작스레 통보를 받은 터라, 단기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넉넉지 않은 마음을 잘게 쪼개서 간신히 이곳에 이어오던 잡문들도, 노트에 짧게 남기던 일기도 중단했다. 긴장했고,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오로지 준비에만 매달렸다.


출장 기간 일주일. 보고서를 정리하는데 다시 일주일. 이래저래 넉넉하게 잡아도 3주 정도 되는 시간동안 문장 한 줄을 쓰지 못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급한 일이 다 정리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없진 않았다. 하던 운동이며, 다른 일들은 출장 이전 상태로 모두 돌아왔다. 오로지 글쓰기만 돌아오지 못했다.


쓴 맛 나는 소화제


글쓰기와 관련해서라면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글로 돈을 벌지도, 기고를 하지도 않는다. 그럴 깜냥이 되지를 않는다. 그저 나의 작은 일들을 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의 효능은 잘 알고 있다. 눈이나 귀, 감각으로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는데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글쓰기는 식후 산책, 소화제같은 의미다.


그러나,


글쓰기는 고된 일이기도 하다. 마음이 고된 일이다. 작은 일상에 관한 글쓰기 조차 그렇다. 당장은 쓸 수 없다. 적어도 며칠은 묵혀두면서 곱씹어야 한다. 글로 옮기는 과정도 괴롭다. 노트에 라면 펜의 무게가, 컴퓨터에 라면 커서의 무게가 늘 버겁다.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나의 글쓰기는 가파른 경사로에서의 산책이고, 너무 쓴 맛이 나는 소화제다.


글쓰기의 관성


출장 이후에 다시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까지 3개월이 넘게 걸렸다. '꼭 쓴다'고 결심한 오늘조차도 자정이 다가올 때까지 자리에 앉지를 못했다. 일단 한 번 멈춘 글쓰기는 좀처럼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일단 한 번 시작하면 계속 이어갈 힘이 생기는 것도 글쓰기다. 독서를 이야기할 때 '책 읽는 근육'이란 말을 쓰는데, 글쓰기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쓸수록 새로 시작함의 고됨이 덜하다. 반대로, 쓰지 않으면 매번이 고되다. 일종의 관성이 작용한다.


그리고 중독성


내게 글쓰기가 '소화' 같은 이유는, 아마도 나의 피곤한, 혹은 예민한 성격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인간관계를 포함한 일상에서, 비교적 작은 부분에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작은 표정 변화를 읽고 그것을 기억한다. 이렇다 보니 무던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인식하고, 그것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에서 만큼은 글쓰기가 구원에 가깝다. 복잡한 감정을 글로 옮기기 위해서는, 명료하게 정리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복잡성이 해체되고, 괴로웠던 마음들이 사라진다. 거기서 오는 후련하고 편안한 마음들이 자꾸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글 쓰는 게 중독성이 있어요. 고통스러우면서도 좋은.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을 때 일종의 황홀경에 빠지는데 그걸 깨고 싶지 않게 되지요” - <월간산> 소설가 박범신 인터뷰중


미안합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꾸역꾸역 글을 썼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말들과 생각이 입으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천방지축 터져나왔다. 가까운 친구에게도 상처를 줬고, 그랬다는 사실이 내게도 상처를 줬다. '나 같은 사람의 글쓰기'라고 시작했지만, 사실 정말 쓰고 싶었던 건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오랫동안 쓰기를 쉬어서, 제대로 소화를 해내지 못해서 나에게, 모두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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