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새벽에 깨달은 것들

by 김까치

산후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우리 세 식구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로서는 유년기 일부를 보낼 제 집에 처음 발을 들인 감격스런 날이었고, 아내로서는 그토록 그리던 집에 근 한 달 만에 돌아온 반가운 날이었다. 당장에 펼쳐질 새로운 세계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우리는 일단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즐거워했다.


아들 단이는 산부인과에서도, 조리원에서도 워낙 잘 먹고 잘 자는 아기였다. 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바뀐 환경에서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잤다. 단 하나, 투박하고 미숙한 아부지의 손과 마음에는 영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았다. 단이를 재우고 먹일 때, 나는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집 무너질 것 같은’ 우렁차고 긴 울음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새로운 세계

나는 대체로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의식적인 암시가 아니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리 되는 타입이다. 아들 단이가 처음 집에 온 일주일은, 그래서 내게는 완전히 새로운, 당혹스런 세계였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아들의 뜻 모를 강력한 울음을 몇 번 겪은 후로 ‘무섭다’, ’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며칠 내내 했었다.


아내와 나는 하루씩 번갈아가며 밤 수유를 온전히 책임지고 있다. 당번인 날은 하룻밤에도 여러 번 우렁찬 울음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분유를 탄다. 어두운 거실 소파에 앉아 아들에게 젖병을 물리면 피로에 정신이 혼미하다가도, 젖꼭지를 쪽쪽 열심히도 빠는 아들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져다 부비고 싶은 충동에 또 정신이 혼미했다. 아, 이것 역시 새로운 세계다.


멋있는 아내

우리가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내의 해결사였다. 아내의 컴퓨터가 말썽을 부리거나, 새로 산 가구를 조립해야 하는 등의 사소한 문제부터, 사회적 다툼 같은 큰 일까지, 나는 늘 아내에게 닥친 크고 작은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내게 ‘멋있다’는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요즘은 내가 아내에게 ‘멋있다’는 말을 자주 건넨다. 우리 둘 다 해본 적 없는 육아 앞에, 근래의 아내는 과감하고, 용기 있고, 유능하다. 우는 아들을 끝내 달래지 못하고 자포자기한 새벽, 아내는 조용히 나타나 마법 같은 평화를 되찾아주는가 하면, 회복도 덜 된 몸으로, 되려 나의 부족한 잠을 챙기려 애를 쓴다.


흔히들 말하는 엄마라서 강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별달리 드러날 일 없던 아내의 단단한 마음이 이제사 내 눈에 조금씩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모두

연령대가 비슷한 동료들이 많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함께 일하는 이들의 결혼이나 출산 시기도, 공통의 화제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영유아를 키우는 동료들이 많다. 그동안 이들의 출산이나 육아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저 막연하게 ‘고생하셨다’ ‘힘드시겠다’ 같은 말들을 건넸다. 딱 그 정도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한 것과, 구태여 말하지 않은 것 모두 잘 들리지 않았다.


요즘 아내와 ‘다들 대단하다’는 말을 꽤 자주 한다. 밖에 나가면 흔히 보이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가족들, 모두 구구절절 말하지 않지만 ‘잠 못 이루는 새벽’도 ‘작은 얼굴에 감동받은 새벽’도 숱하게 보낸 이들일 것이다. 이제는 이들이 말하지 않아도, 지금의 이들을 있게 한 대단한 시간들이 잘 들리고, 잘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태어난 아들과, 아내에 대해 이어 씁니다.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아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날마다 처음인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