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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북이 Dec 20. 2020

엄마와 타로카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손에 든 '한 번도 믿어보지 않은 것'

엄마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내게 "나를 믿고 이렇게 해봐라" 쉽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녀에게 배우고, 반대하고, 그녀를 따르기도 하면서 믿음이라는 것이 쌓였다. 그리고 얼마전 25년 내 인생이라는 시간에 걸쳐 공고히 굳어진 믿음이 생각지도 못하게 무너졌다고, 나는 여겼다.



엄마가 타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곧이어 집에는 한 뭉텅이의 카드와 그 아래에 펼쳐질 까만색 천이 생겼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앞에 앉혀두고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했다. 엄마는 연습을 하고 나는 공짜로 타로를 보고. 일석이조겠지만 나는 타로를 믿지 않는다. 몇 달을 속앓이를 하면서도 끊어내지 못한 질긴 짝사랑에 대해서도, 절절하게 원하는 취업의 문이 열릴 시점도 카드에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타로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 엄마에게는 그저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나누는 대화를 부담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엄마가 들려주는 타로의 놀라움이, 엄마가 해석한 새로운 이야기가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왜 자꾸 타로 얘기만 하는거야, 엄마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내게 하는 말이 허공에만 떠다녔다. 타로를 믿지 않는 나는 타로하는 엄마를 믿지 않게 된걸까. 엄마를 향한 신뢰가 깨졌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본가를 갔다가 책상에 쌓인 노트들을 봤다. 엄마 공부할 때 필요하다고 내게 학교에서 사다달라고 했던 두꺼운 노트였다. 타로를 공부하면서 이렇게 쓸 게 많은가? 궁금해서 열어본 노트에는 엄마의 고민과 열정이 단단하게 새겨져 있었다. 엄마는 일하면서 언제 이렇게 공부한걸까 돌이켜보니, 틈날 때마다 이어폰을 꽂고 강의 녹음한 걸 다시 듣고, 빼곡히 받아적었던 수업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개인마다 더 정확하고 맞는 타로가 되도록 이미 상담한 걸 복기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믿지 않은 건 타로가 아니라 엄마의 진심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새로운 걸 공부하겠다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엄마가 느끼는 재미와 엄마가 뒤늦게 뿜어내는 열정을 내가 존중해주지 못했다.


이제 엄마가 해주는 타로 얘기가 재밌다. 엄마가 새로 연구해서 알게 된 내용도 흥미롭고, 그런 엄마가 멋지다. 사실 아직도 타로를 믿지는 않지만 타로를 향한, 새로운 취미를 넘어서 직업으로서 도전하는 엄마의 마음을 믿는다. 그리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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