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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북이 Jul 12. 2020

내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모의 고백

“오늘은 뭐하고 놀까?”

“가위바위보 해서 이기는 사람이 아이스크림 한 입씩 먹자!”


우리 집에는 매일 붙어서 노는 두 사람이 있다. 올해 겨울에는 생일도 며칠 차이나지 않았는데 사이좋게 각자 68개와 7개의 초를 불었다. 61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우리 아빠와 조카는 ‘아웅다웅’ ‘하하호호’ 둘도 없는 친구다. 하지만 “소희는 누가 제일 좋아?”라는 유치한 질문에 언제나 당당히 1등을 차지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그건 바로 나, ‘어에이모’다. 




2014년 3월,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대입이라는 목표만 보고 몇 년의 시간을 보내왔던지라 새내기라는 새로운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첫 수업에서의 오리엔테이션과 밤늦게 모인 동기들과의 모임. 모두 나를 설레게 했다. 그렇게 스스로 대학생이 되어가던 중 나는 갑작스럽게 이모가 되었다.


힘들게 바리바리 짐을 싸서 기숙사로 들어온 지 3일째 되던 날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본가로 뛰어갔다. 병원의 작은 침대에는 사진으로만 보던 언니의 어릴 때를 똑 닮은 아기가 곤히 자고 있었다. 가슴이 미친 듯이 쿵쿵거렸다. 나는 말도 안 되게 너무 두려웠다.


조카가 태어나고 나는 짐만 기숙사에 둔 통학생이 되었다. 새내기의 1학기에 기숙사라는 환경까지 내가 가야할 모임은 끊이지 않고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서 수업만 끝나면 집으로 향했다. 아기 손도 잡아보고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도 보면서 눈앞에 내 조카가 있다는 사실이 점점 실감났다. 하지만 아기가 보고 싶어 집에만 갈 뿐 그 어디에서도 나는 아직 이모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교무실에 불려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부반장에 수업도 열심히 듣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던 나는 지난 며칠의 나를 돌아봤다. 그런데 나를 맞이한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조심스러운 목소리는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엄마가.. 결혼을 일찍 하셨니?” “큰언니랑 오빠가 너랑 나이 차이가 왜 많이 나는지 알고 있어?” 나는 내가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가슴이 쿵쿵거렸다. 4남매의 막내. 큰 언니와 나이 차이는 14살. 큰 언니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상대적으로 너무 젊은 우리 엄마. 내게는 그 자체로 당연했던 우리 가족이 선생님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던 걸까?


아빠가 재혼을 하셔서 그렇든, 부모님이 입양을 하셨든, 또 무슨 사연이든 그 이유가 우리 가족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나는 4남매로 북적거리는 집이 좋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와 오빠가 나를 아껴주는 게 좋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묻던 조용한 목소리는 어린 내가 우리 가족이 ‘정상적’이고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이후에도 수없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 처음에는 누가 또 물어볼까봐 가족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시선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게 자랐다. 하지만 조카를 처음 본 그 날, 나는 또 다시 어렸을 때 느꼈던 두려움을 마주했다.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꼭 누군가가 옆에서 내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언니 몇 살이신데?” “너네 언니 결혼하셨어?” “조카는 언니네 집에 있는 거야?”


언니는 혼자 아기를 키울 거라는 내 대답에 또 예전과 같은 시선을 받을까봐 나는 한 달이 넘도록 주변에 조카가 생겼다는 말을 아예 꺼내지 않았다. 사실 이건 부끄러운 고백이다. 나는 내가 매일 보고 있는 예쁜 아기의 이모가 되는 걸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 당시의 나는 누구보다 힘들었을 언니를 마음 아프게 했을지 모른다. 더 부끄러운 건 내가 이모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걸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했다는 거다.


‘엄마’, ‘하무니’, ‘하부지’, ‘어에이모’를 가장 많이 부르면서 커가고 있는 조카는 매일 세상에서 이모가 제일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친구가 “너는 아빠 없는 거지?”라고 물어봐서 그냥 이유 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아빠 얘기를 종종 꺼낸다. 7살 아이에게 사랑하는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는 가장 큰 세상이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각자의 세상을 가진다. '정상가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편견으로 작은 아이가 '없는 존재'를 곱씹으며 슬퍼해야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나는 바쁜 서울 생활에도 더 자주 조카를 보러 가고 매일 조카에게 사랑한다고 내 마음을 표현한다. 나는 조카가 우리 가족은 아빠가 없고 엄마만 있다고 생각하기 전에 우리 가족은 이모도 있고 엄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고 할머니도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두려워서가 아니라 신나서 쿵쾅거리는 가족 얘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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