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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북이 Jun 18. 2020

언어의 감옥

명사에서 동사로

글을 쓰다 보니 문장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게 됐다. 사실 문장 성분이니 품사니 몰라도 말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그래서 시험 범위라서, 한국어 자격시험 공부를 위해 무작정 외우던 국어의 문법은 항상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러다 자연스러운 서술어 사용에 대해 말하는 흥미로운 글을 읽게 되었다. 같은 말이어도 명사와 동사로 문장을 마무리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우리말을 더 자연스럽고 풍부하게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이다.”

“이 글은 우리말을 더 자연스럽고 풍부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두 문장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위의 문장은 ‘글’이라는 명사를 활용해 서술한다. 그래서 주어와 서술어가 반복된다. 반면에 아래 문장은 ‘말한다’는 동사를 활용해 주어를 표현한다. 두 문장을 비교해보면 서술어에 동사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왜 명사를 사용하면 부자연스러울까. 서술어에 쓰이는 명사는 서술하는 대상을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면 나를 소개하는 말도 명사를 활용해서 서술할 때가 많다. 내 전공은 교육학이다. 내 취미는 음악 감상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다.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더 풍부하게 담아내지는 못한다. 내 전공이 교육학이라는 말은 수많은 교육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될 뿐이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이 나를 의지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한다.”라고 나를 더 나답게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떡볶이를 먹는다.” “나는 한 음악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것만 들어서 항상 한곡 재생이 되어있다.”도 마찬가지다.

    

명사로 서술하는 건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보다는 큰 틀에 넣어버린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그렇게 명명한다. 고령화 사회 속에서 우리가 ‘늙어가는 것’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사회에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고령인구를 걱정했다. 고집이 세고, 대중교통이나 공원에 몰려 있으며, 폐지를 줍고, 홀로 TV 앞을 지키고 있는 모습. ‘노인’이라는 단어를 듣고 우리가 떠올리는 흔한 이미지다. 수많은 나이 든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모습을 보지 않는다. 그냥 편하게 노인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명사로 묶어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저 사람은 노인이야, 흑인이야, 장애인이야, 학생이야, 어린애야, 비정규직이야, 동남아시아 사람이야. 그 주체는 누구든 될 수 있다. 우리 사이에는 이런 명사보다 더 풍부한 동사가 필요하다. 고정된 인식보다는 변화하고 움직이는 관계 속에서 자연스러움을 찾아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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