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 60세 미만 출입금지>를 보고
얼마 전 첫눈이 내렸다. 언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첫눈을 봤냐는 내 물음에 가족들 얼굴이 하나 둘 씩 화면 안으로 나타났다. 제각기 다른 온도로 맞이했을 첫눈을 떠올리는 표정도 달랐다. 가장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은 아빠였다.
예상을 못했다. 아빠의 세상에서는 68번이나 계절이 변화했다. 물론 정말 다 '처음'은 아니었겠지만, 아빠가 보아온 첫눈도 쉬지 않고 매년 찾아왔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7살 조카가 느꼈을 신남과 25살의 내가 느낀 설렘에 비해 아빠의 첫눈은 그저 그랬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렸다. 하지만 손녀의 장난에 터져나온 웃음과도, 딸내미가 처음으로 용돈이라고 건넨 봉투를 받을 때 얼굴에 걸렸던 미소와도 조금은 결이 다른 표정이 보였다. 아빠도 여전히 첫눈을 보면 설렌다.
색을 칠하고 그 위에 또 칠하다보면 똑같이 덧칠이 된 또다른 그림들과 '다른 그림'이라는 걸 어느 순간 잊게 된다. 분명 다른 삶의 도화지에 다른 붓으로 그려온 그림이지만, 단순히 세월이 흘렀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나이든 인생들이 '같은 취급'이 되기 마련이다. 달력을 더 많이 넘겨왔다고 해서 아빠가 첫눈을 보고 설레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노인이라고 다 똑같이 자식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떠난 빈자리에 쓸쓸해하고, 눈 감을 날을 세어가며 고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이 만들어낸 '60세 미만 출입금지' 구역에서도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있는 세 사람이 있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 많이 칠해진 색이 다르고, 붓의 결이 다르다. 그래서 각자가 보낼 60세 이후의 삶이 다채롭다.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아픈 60+5세의 영자. 병원을 가는 게 무서워 혼자 살면서는 늘 피하던 건강검진이지만 함께하게 된 언니들에게 같이 가달라고 용기를 낸 60+2세의 경희. 늘 마음에 품고만 있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60+5세의 수아. 60세 이후의 삶에는 그동안 깊게 이어온 인연의 마무리가 있고, 또다른 관계의 성장이 있고, 익숙함으로부터의 탈피가 있다. 노인에게 따라붙는 '독거'라는 말이 어둡고 무거운 측면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사회가 돌보아야할 복지의 문제와 하나의 집단을 향해 쉽게 가지는 편견은 구분되어야 한다.
60+8세의 종희의 딸도 평생을 보아온 아빠에게서 계속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방문을 닫고 한참을 나오지 않던 아빠의 방 앞에 다가갔을 때 나지막히 들리던 "'어쩌다가 한바탕~ 턱빠지게 웃는다' 다같이 해볼까요~" 유튜브 노래교실의 소리가 그랬다. 하루는 딸 자취방에 왔다가 요즘 무슨 책이 재밌냐며 빽빽했던 책장 한 칸을 흐트려놓고 몇 년째 다시 돌려주지 않는 파스텔 톤의 책이 그랬다. 종희, 영자, 경희, 수아가 살아가는 지금의 '60세 미만 출입금지' 세상이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내 60+ 인생'과 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