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번뇌 어린 108배

by 도담도담



새로이 밝은 쥐의 해, 나는 108배를 시작했다.


나는 두 곳의 절에서 두 번 수계를 받아 불명만 두 개인 불명 부자지만, 절에 일 년에 한 번 가면 많이 가는 무늬만 불교 신자다. 그래도 무서운 생각이 들어 잠이 안 올 때나 걱정되는 일이 있어 불안하고 초조할 때면 속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리긴 한다. 한 마디로 필요할 때만 불교에 의지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왜 2020년 1월 1일부터 108배를 시작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운동하려고!


아파트 헬스장에 혼자 다니긴 싫고, 동네 지인 꼬드겨서 그 집과 우리 집의 중간지점에 있는 헬스장에 다니면 먹고 마시느라 돈을 쓸 테고 혼자 다닌다면 헬스비 기부자가 될 미래가 훤히 보인다. 가장 편한 운동은 무작정 걷는 것인데 집에서 나가려면 머리를 감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 귀찮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다녀오지 못할 테고, 일하다가 오후에 나갔다 와서 내가 다시 책상에 앉을 것 같지 않다. 나 자신을 알라.


이렇게 1번부터 10번까지 못 하는 이유, 정확히는 안 해도 될 이유를 댄 끝에 집에서 하는 운동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람 시선 신경 쓸 필요 없이 집에서 머리 질끈 묶고 후줄근한 옷을 걸치고 마음 내킬 때 할 수 있는 운동. 여기에는 맨손체조, 스트레칭, 스쾃(바른 표기가 왜 이리 어색한지. 그냥 스쿼트라고 쓰면 안 되나요? ), 플랭크, 버피테스트, 이외 이름 모를 각종 운동이 있다.


그중에서 굳이 108배를 선택한 이유는 이왕 운동하는 김에 기도도 덤으로 같이 하려는 가성비 따지는 근성이라 하겠다. 혹은 입으로는 ‘무늬만 신자’라 주장하지만 내면에는 불교를 향한 들끓는 정열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음, 가슴에 손을 얹고 이건 아닌 것 같다.


초등학생 때 몇 년간 엄마가 가라고 해서 어린이 법회에 다녔다. 설법도 듣고 활동도 들었는데, 어려서부터 소심함과 귀차니즘 하나는 최고였던 나는 일요일마다 법당에 가서 어색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반야심경을 70퍼센트쯤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나름 중요한 시간을 보냈나 보다.


그때 108배의 의미도 분명히 배웠을 텐데,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법당에서 묵으며 매일 108배를 하는 캠프에 참여해 힘들고 짜증 났던 추억은 있다. 이때 친오빠가 절을 몇 번 하는지 세는 담당이었다. 재미있게도 싫다는 나를 강제로 캠프에 보냈던 엄마는 그런 적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러면 불안해진다. 어제 뭐 했는지도 한참 생각할 정도로 지난 일을 잊고 사는 사람이라 내 머리를 못 믿겠다.


뇌 속에 기억을 꿀꺽꿀꺽 먹어 치우는 해마를 키우는 나지만 다행히 108배를 하는 법은 잊지 않았다. 사실 절은 그냥 무릎 꿇고 바닥에 이마를 댔다가 일어나면 되니 잊어버릴 것도 없다. 그래도 허리와 무릎의 부담을 더는 방법은 있다. 어렸을 때처럼 마구잡이로 했다가는 체력을 키우기 전에 무릎이 나갈 것이다. 내 무릎은 소중하다. 이렇듯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몸에 부담을 덜 주는 절하기뿐인 사람이지만 수행하려고 진지하게 108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 이론이야 필요하면 나중에 채우면 되지 않겠나.


1월 1일부터 시작했다고 썼지만 정확히는 2일 0시 15분쯤 첫 108배의 첫 번째 절을 시작했다. 1일은 차례 지내고 조카랑 놀아주느라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다. 108배를 다 하는 데 한 25분쯤 걸린 것 같다. 오랜만에 하니 힘들어서 중간에 멈추기도 했고 숨이 차올라서 물도 마셨다. 108배는 ‘관세음보살’이든 ‘석가모니불’이든 ‘나무아미타불’이든, 입에 맞는 진언을 하며 몸과 마음을 바쳐 귀의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욕심 많은 중생이므로 염주를 굴리며 이런저런 소망을 중얼거리느라 바빴다.


2020년에는 조금 더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2020년에는 일을 더 많이 하게 해주세요.

2020년에는 번역료가 더 오르게 해주세요.

2020년에는 내 가족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덜 힘들고 즐겁게 해주세요.


꼴랑 108배 하나 대충 하면서 바라는 것도 참 많지 싶다. 과욕은 금물인데 자꾸 바라게 된다. 체력 증진을 위해 시작했으면서 이 무슨 욕심인가. 108배를 꾸준히 하면 이 갖은 번뇌와 욕심이 차츰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질까?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니 똑같을까?


오늘까지는 꾸준히 절을 했다.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너무 힘들어서 반으로 팍 줄여 54배만 한 날도 있지만 일단은 만족스럽다. 운동하면 기분이 좋다는 사람들 말을 평생 이해 못 했는데, 마지막 절을 마치고 나면 꽤 개운한 것 같기도? 건강한 몸과 긍정적인 마음을 위해 강박적이지 않게 즐기면서 오래오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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