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을 위한 인생 한 그릇
입구로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냄새가 진동이다. 중간에 생선가게가 하나 있어 냄새가 살짝 옅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냄새의 위력은 대단하다. 괜히 기분까지 유쾌해지는 요 냄새. 엄마를 따라 쫄래쫄래 시장을 오는 날이면 난 흠뻑 취하고 만다. 시래깃국에 순대 담그는 냄새에 사람들의 발길이 바쁘다. “아주머니! 순대 1인분 포장이요. 우리 집은 국물도 좀 싸주세요.”
엄마가 다니시던 재래시장에는 순대골목이 있다. 그 골목 한 귀퉁이에는 순대를 꼭 시래깃국과 함께 파는 유명한 순대 아주머니가 있다. 김이 폴폴 올라오는 큰 찜통에 온갖 내장과 순대 꾸러미가 가득 올려져 있고, 아주머니는 한 손에 목장갑을 끼신 채 뜨거운 순대를 척척 잡아 쉴 새 없이 썰고 계신다. 순대와 내장이 한 뭉텅이 담겨지면 이번에는 시래깃국 차례다. 순대 찜통 옆에 보글보글 소리까지 내며 죙일 끓고 있는 시래깃국. 어찌 보면 흙탕물을 끓이고 있는 것도 같아 보인다. 작은 양푼 냄비에 검은 비닐봉지를 두 장 펼친 뒤 시래깃국을 한가득 담아주신다. “다시도 담아 드릴까?”
“얘. 데여. 손 떼라.” 시래깃국을 담은 비닐봉지에 손을 대자 엄마의 잔소리가 쏟아진다. 몰래 다시 대본다. 순대골목의 냄새가 이제 작은 비닐봉지에 담겨 집에 가는 길. 가는 길 내내 택시 기사님의 눈치를 봐야 하겠지만 집에 가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뜬다. 뜨거운 국물 덕에 늘 차가운 손마디까지 훈훈해진다.
경연이가 놀러 왔다. 남들은 이제 제대를 하는 마당에 뒤늦게 군대 가는 녀석이 안쓰럽기만 하다. 장교라고 이름 달아봐야 어울리지도 않을 녀석인데 괜히 더 고생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밥부터 먹자.”
지방은 처음이라는 서울 촌놈을 데리고 외곽으로 향했다. 아버지께 미리 여쭤본 한식집을 물어물어 찾아가 죽통밥을 먹었다. 허기가 채워졌는지 얼마 전에 다녀온 지리산 자랑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장단에 맞춰 고개도 끄덕이고 사진도 보다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어디 가보고 싶니?”
“글세...... 제일 시골스러운 곳?”
“여기 시골 아니라니깐.”
“서울 아니면 다 시골인거다.”
누가 서울 촌놈 아니랄까봐. 따신 밥 먹여줬더니 또 시골 타령이다. 그나저나 어디를 데려가야 녀석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군대 가기 전의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니 나름의 부담감까지 생긴다.
‘온통 다 시골스러운데 제일 시골스러운 곳은 또 뭐야.’
생글거리는 녀석의 면상이 얄밉다. 물을 한 컵 마시고 골똘히 생각한다. 대학 들어가면서는 서울이 더 익숙한 나에게 제일 시골스러운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엉덩이 깔고 더 생각을 쥐어짜 봐야 아무것도 나오질 않겠다.
“일어나. 더럽게 시골스러운 곳 하나 있어.”
원래 사람이 많은 집이긴 하지만 날이 추워서일까, 손님이 평소보다 두 배는 많아 보였다. 느긋하게 먹고 있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나 하는 찰나에 자리가 났다. 잽싸게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겨울이 되니 순댓국집 의자에도 온기가 들어와 있었다. 이르게 먹은 점심을 소화시키겠다고 부지런히 걸어온 우리에게 의자의 온기는 여간 반갑지 않았다. 엉덩이에 손을 깔고 싣고 온 추위를 녹인다. 여전히 찜통에는 쉴 새 없이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많아 보이는 순대를 찜통에 놓아두고 순대 아주머니 역시 쉴 새 없이 순대를 썰고 계신다.
“아주머니! 저희 순대국밥 두 개요.”
“응. 알았어. 아이고, 이 총각은 인물이 훤하네.”
“아, 네.......”
녀석, 얼굴 붉히긴. 장사꾼들은 원래 누구에게나 인물이 훤하다고 하는 것을 이 얼빠진 놈은 모르는 눈치다.
“우리 작은 애가 딱 총각만 할 때 미국으로 갔는데 벌써 4년이 넘었네. 지 애미 고생하는 건 보이지도 않는지 공부를 하겠다잖아. 그러니 어째, 시켜야지.”
넉넉한 뱃살에 순대 써는 손마디마저 퉁퉁 불은 아주머니는 물어보지도 않은 아들 이야기에 신이 나셨다. 서울 촌놈은 아주머니의 넉살에 살짝 긴장까지 했는지 애꿎은 초장만 젓가락으로 젓고 있다.
“지난달에 연락이 왔는데 이제 조금만 있으면 박사 학위를 딴다네. 요즘 박사가 넘친다지만 그래도 어디 박사 되기가 쉽나. 우리 아들이 공부는 참 잘한다니깐.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
새로운 손님 덕에 이야기가 끊기나 싶었더니 순대국밥 두 그릇이 우리 앞에 척척 놓이자마자 아주머니는 또 아들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하긴 박사를 따도 문제긴 해. 강사라고 대학 다니면 월급이 100만 원도 안된다는데, 난 평생 순대 팔아서 아들 뒷바라지나 할 팔잔가봐. 흐흐흐”
순대국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시래깃국에 담긴 순대국밥을 처음 봐서인지,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아직 안 끝나서인지 경연이는 숟가락을 담갔다 뺐다 한 술을 시원하게 뜨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익숙한 시래깃국 순대국밥을 내가 먼저 한 술 뜬다. 이미 든든히 먹고 온 밥심은 걸어오는 겨울 길에 다 내던지고 왔나 보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자마자 허기가 진다. 경연이에게 어서 먹으라고 턱으로 국밥을 가리킨다. 녀석의 입맛에도 맞는지 쉬지도 않고 계속 먹는다.
“아주머니,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이건 내가 공짜로 주지. 총각이 잘생겨서 덤으로 주는 거야.”
비록 간간이 오긴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이 집 순대를 먹어온 나는 몰라본 채 처음 온 저 녀석만 챙기시다니. 그래도 좋다. 덤으로 술 한 병 얻었으니.
“야, 천천히 먹어. 그러다 코 빠지겠다.”
냄새나는 시장 골목에 앉아 투박한 순대국밥을 신나게 먹고 있는 서울 친구 놈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다. 이럴 땐 나도 서울 촌놈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 낮술 몇 잔에 시래깃국에 담긴 순대국밥까지 깔끔히 마무리하니 이제야 친구를 군대에 보내도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흐르는 땀과 콧물을 허겁지겁 닦으며 다음 손님을 위해 의자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총각, 나중에도 또 와.”
바쁘게 순대를 썰고 시래깃국을 담으시면서도 순대 아주머니는 인사를 잊지 않으신다. 국밥 한 그릇에 기분이 좋아졌는데 아주머니의 퉁퉁 불은 손에 갑자기 울컥한다. 대낮에 낮술도 모자라 울 수는 없으니 어서 가자고 친구를 재촉한다. 순대골목을 나서자 다시 한겨울이 파고든다. 순대국밥에, 아주머니의 아들 자랑에, 낮술까지 실컷 먹고 나선 우리는 몸을 웅크리며 터미널을 향해 걷는다. 추위가 아무리 세차도 데워진 내장까지 파고들 것 같진 않다. 아주 추운 날이 오면 다시 먹으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