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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내음 Mar 25. 2016

열하나. 당신의 봄

기다리던 봄이 왔는데 당신은 왜 깨지 않나요

사면이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곳이 있습니다.

그 안에 당신이 누워있지요.

텔레비전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지네요.

끊임없는 말소리에 깰 만도 한데

당신은 오늘도 잠만 자는군요.

기다란 관을 타고 수액이 들어가네요.

물을 마시지 않아도 목마를 일은 없겠군요.


봄이 왔어요.


봄이 왔다고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고 함께 나가보자고 호들갑을 떨고 싶은데

당신은 꿈쩍도 하지 않네요.

어쩌면 이 방에는 창문도 달려 있지 않은 건가요.


봄이 왔어요.


당신이 사랑하는 목련이 이제 막 움을 트고

어쩌면 며칠 후에는 꽃봉오리도 달릴지 모르겠어요.

멀리 산자락에는 스멀스멀 아지랑이도 무릎을 펴고

사람들은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봄이 왔어요.


그토록 당신이 기다리던 봄이 왔다고요.

이제 눈을 떠봐요.

누워있는 육신에 갇힌 당신의 마음을 깨워보아요.

봄이 왔다고. 이제 좀 일어나자고.


어서,

나와 함께 봄볕을 맞으며 샘물을 마셔요.

그것도 정녕 어렵다면

당신의 관 속에 수액 대신 봄의 샘물을 넣어줄게요.


맞아요.

주삿바늘 끝에 매달려 들어오는 그 아찔함이

바로 내가 보내는 봄이에요.


봄이 왔어요.


수도 없이 기다리던 당신의 봄이 왔는데

모두들 봄을 맞느라 정신없이 바쁜데

왜 당신은 계속 잠을 자나요.

당신의 봄이 다 녹아버리기 전에

어서 일어나 나와 샘물을 마시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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