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내음 Apr 01. 2016

세 번째 편지

부모로서의 첫걸음마 :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우는 시대  

사랑하는 나의 딸, 도담이에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어봤어. 싱그럽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새 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침이었지. 아침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갑지만 산뜻한 공기가 새 봄의 냄새를 더욱 진하게 하고 있었단다. 엄마는 학생 시절에 이 느낌이 좋아 가끔 일찍 학교를 갔던 날이 있었던 것 같아. 제일 먼저 도착해 빈 교실에 혼자 앉아있는 고요함을 즐기곤 했었단다. 너도 나중에 해 보렴. 별 거 아닌데 무언가 특별해진 느낌이 들거든. 


이틀 전 일을 기억하니? 네가 음식을 달라 해놓고는 한 숟가락 먹고 나서는 죄다 안 먹겠다를 반복해서 엄마는 결국 너에게 화를 냈었지. 달라고 한 음식을 다 먹지 않으면 저녁을 주지 않겠다고도 얘기했지.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네가 설사를 했지. 어찌나 미안하던지, 네가 남긴 음식을 다 치우고 밥에 물을 붓고 눌은밥을 만들면서 내가 너무했나 하는 생각으로 잠들어 버렸단다. 


그 날 엄마는 초심에 대해 생각해 봤어. 세상 부모 모두가 그러하겠지만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초심 말이야. 어떤 일이든 어느 사람이든 힘든 순간이 오면 초심에 대해 생각해보거든. 


초심을 생각하다 보니 엄마, 아빠가 함께 받았던 부모로서의 첫 교육이 떠올랐어. 먼저 부모가 되었던 엄마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등록했던 교육이었지. 아이가 생겼다는 감탄 외에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미숙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이었단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


이런저런 글 속에서 많이 보았던 표현이지. 엄마를 해낸다는 것, 부모로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일 거야.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 그게 왜 쉽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이유가 있겠다만 그중 하나는 분명, 부모가 되는 법을 따로 교육받은 적이 없어서일 거야.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자격증이 없어도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되는 법이거든. 


무려 20년에 가까운 교육을 받으면서 '부모가 되는 법'에 관한 수업은 들은 적이 없어. 기껏해야 가정이란 과목에서 태아와 유아의 발달 단계를 시험공부용으로 열심히 외웠던 것 밖에 없지. 그렇게 중요하다는 국어, 영어, 수학은 참 많이 공부했으면서도 부모가 되는 법은 공부하지 못했으니 부모로서 겪는 시행착오와 난항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 않겠니?


엄마와 아빠는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보다는 운이 좋아 학교가 아닌 곳에서 부모에 대한 첫걸음마를 배웠단다. 어르신들 말씀처럼 세상 정말 좋아진 거지. 엄마 뱃속에 있는 네가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네가 처음 세상의 빛을 보는 날에 엄마, 아빠는 무엇을 해야 너를 도울 수 있는지 등을 배웠단다. 모두 다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전문가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시니 참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었어.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지. 어떤 강의가 이후에 가장 도움이 되었을까 생각해봤지. 그런데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더라. 바로 엄마, 아빠가 그런 자리에 참여해 부모로서의 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이더라고.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첫걸음마를 뗀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싶구나. 너도 그렇게 생각해 주겠니? 물론 너를 키우다 보면 처음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날이 허다하겠지만 그래도 해가 되고 싶은 해바라기가 결국은 해를 향해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엄마, 아빠도 우리가 정한 이상적인 부모에 점차 가까워질 수 있겠지. 


이쯤에서 궁금해지겠지? 대체 우리 엄마, 아빠의 이상적인 부모상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야. 그건 비밀이야. 네가 알아버리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죄다 평가할 거란 말이지. 네가 충분히 많이 커서 우리의 손길을 조금 덜 필요로 하게 될 때 말해줄게. 비록 그 날 네가 "현실과 괴리된 부모상인데요."라고 혹평을 한다 해도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물론, 하나 더 알아둘 것이 있어. 부모로서의 우리 부부의 이상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매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 아이와 부모로서의 시간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계속 변곡을 하니깐 이상향도 생물이 되어야 할 것 같아. 


햇살이 베란다 사이로 더 많이 들어왔다. 아침보다는 해가 좀 더 높이 떠올랐나 보다. 오늘은 엄마가 너를 위해 지은 동시로 편지를 마무리할게. 그럼 안녕. 다음 편지에서 만나자.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엄마로부터 


바다를 걷는 법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땅이 있어요
바다라고 불리는 땅이죠
그 땅을 너와 함께 걷고 싶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데 걸어도 될까요
모래 위에 웅크리고 앉은 몽글몽글한 돌멩이도 걱정하네요

끝이 보이지 않으니 걸어가 보고 싶어요
뒤로 한 발 빼고 싶어 하는 너의 손을 잡고
나는 무작정 바다로 걸어갑니다

도대체 끝은 어디죠
차가운 물이 높아지자 너는 뒤를 돌아봐요

끝이 어디까지인지 가보고 싶지 않나요
밀려 들어오는 파도가 우리를 휘감습니다

끝이 두렵다면 바다를 걸을 수 없어요
닿이지 않는 발을 허둥거리며
나는 푸른빛 속으로 뛰어갑니다

바다를 담은 하늘도 너에게 속삭이네요

어서 바다로 들어와요
바다를 걷기 전에는
바다를 만날 수 없잖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