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을 다녔던 내 직장얘기.
마트 안에 들어가는 오픈 점.
경리 언니와 단 둘인 여직원이었고.
재밌는 여사님, 삼촌, 오빠들 덕에 웃으며
그렇게 오픈을 맞췄다.
경리 언니와 성격에 대해 맞지 않다가. 결국 내가 먼저
점장님께 "저 못하겠어요"를 했는데
되려 언니와 단 둘이 풀라면서 휴식을 주셨다.
속으로 '이게 맞나?'싶었고,
언니랑 어색한 기류 속에 얘기를 나누다가,
사정을 알게 되면서 이해를 했다.
일하다가 발목도 다쳐서 깁스하고 출근하기도 했다.
그렇게 언니랑 둘이서 잘 지내면서
혼자 카운터를 지키다가,
메시지가 왔다.
"언니... 저 이것 좀 알려주실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였다.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다 생각하며 하나, 둘 알려주기 시작했다.
보내는데 얼마나 고민했을지 알 거 같았다.
그렇게 사내 메신저를 주고받던
3살 어린 동생과 친해졌다.
한 참 뒤, 그 동생이 있는
매장에 내가 신입 때 나랑 근무했던 오빠
얘기가 나오면서 더 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동생은 모르는 게 있으면 내게 전화해 물었고,
나는 항상 대답을 해줬다.
그러다 자기보다 2살 어린 동생이 있다는 얘길 했다.
톡방이 만들어지면서 얘기는 더 재밌고,
셋이서 한 번 보자 했는데
진짜로 만나고 나서부터.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우리끼리 서로를 [껌딱지]라는 애칭이 만들어졌고,
달에 한 번은 꼭 보는 날을 맞추기로 했다.
출근하면 아무 얘길 하거나.
업무얘기를 했다.
여러 복잡한 나날이 시작됐다.
강원도 가면 입이 짧아져서 아무것도 안 먹던 나를 걱정하면서 꼬깃꼬깃 만원을 챙겨주던
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였다.
가족끼리 보러 갔을 때도 온몸이 말라계셨는데.
내 충격보단 엄마의 충격을 살피며
반차를 써서 나왔다.
그 먼 곳을 동료들이 그날 바로 찾아와 주기도 했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경리 언니가 육아 휴직으로 들어갔다.
섬이라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는
섬 매장을 두 달을 홀로 경리와 캐셔 일을 병행 3개월을 했다.
쉬는 날에도 기사 전화와 매장 업무 전화를 받으니.
기억력이 좋아졌다.
이 때는 전부 다 기억하자였다.
12월이 되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처음 보자마자, 내가 들었던 생각은
'이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까?'였다.
그전 매장에서 가르칠 때는 나는 그저 가르치는 사람이
없을 때. 짧은 것들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눈앞이 막막했던 나는 PPT파일을 만들어
마우스를 클릭하는 순서대로 기재해 아이에게 건넸다.
하나, 둘 바뀌는 직원들.
그럼에도 오픈 멤버였던 점장님과 나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그룹사 대표님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공항 가는 길에 온다는 소식에 비상이 걸려 청소하고 난리가 아니었다.
먼발치에서 대표님 얼굴을 보다가,
점장님이 나보다 먼저 섬을 떠나게 됐다.
퇴근 때마다가 점장님이 데려다주셨는데
망해버렸다.
거기다 점장님이 쓰는 카드를 정산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늘어나 인사 담당 대리에게 슬쩍 말했는데
그 얘기가 떠난 점장님 귀에 들어갔다.
새로 온 점장님과 3개월 만에
나는 먼저 떠난 점장님의 매장으로 발령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