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 판별하는 질문이 바뀌다.
“다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있는 지를 판별할 때 ‘써왔던’ 질문이다.
결과랑 상관없이, 너무 고통스럽고 토 나올 정도로 노력하면 돌아가기 싫다고 망설임 없이 나오는데,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안심했다.
단편적인 예로, 고등학생 때 올 매일 5시 30분에 등교하면서 1등급을 받기 위해 모든 과목의 교과서 전 범위를 20 회독을 했고,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꿈꿔왔던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에 SNS를 비활성화하면서 공부했고, 올 A+를 받아 전액 장학생이 되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느꼈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온 몸이 부서질 것 같을 때, ‘잘 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통스러워야만 잘 사는 줄 알았고, 힘들어야만 제대로 하는 줄 알았고, 슬퍼야만 나중에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창업을 시작해서도 줄곧 잠을 줄이고 일 외에 사적인 즐거움을 극도로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일론 머스크 같은 천재도 주 80시간을 일한다고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은 더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주 100시간을 도전했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일론 머스크랑 맞춰서 80시간씩만 일하고 나머지 20시간은 공부하고, 책 읽고, 고민하는 데에 썼다.
마치 금욕주의를 추구하는 성직자처럼 우직하게 일만 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내 절박함과 간절함이 거짓이 아니라는 징표라고 생각했다.
극단적으로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노점상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만 23세까지 연애를 한 번도 안 했다. 가장 활발할 20대 초반 내내 연애와 담을 쌓은 것은 나에게는 일종의 칭호 같은 것이었다.
친구들이 클럽에 가서 노는 것도, 연애를 하고 행복해하는 것도, 해외여행을 가거나 교환학생을 가는 것도 너무 부러웠지만, 우리 서비스를 생존시키기 위해 포토샵부터 외주, 콘텐츠 제작, 프로덕트 기획, 유저 인터뷰 등 모든 잡무를 다 했다.
지금까지는 그게 먹혔다. 죽어라 노력해서 안 된 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8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입시라는 레이스를 시작하고 실패하지 않았던 이 마인드로 서비스도 간절하게 생존시키려고 고군분투했고, 작년 11월에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간절했고, 우리 팀원들은 누구보다 똑똑하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팀원을 모시기 위해서 채용공고도 끊임없이 리뉴얼했고, 업데이트했다. 지원자분들이 오시면 HTML로 ‘합격하는 맛’이 있도록 이메일을 일일이 꾸며서 회사 정보와 함께 합격 이메일을 보내드렸다.
면접 일정을 잡았고, 면접일에 맞춰 회의실을 예약하고 지원자들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생긴 질문들을 연습했다. 하루에 3명씩 인터뷰를 봤는데, 예정 시간이 다가와도 아무런 연락도 없이 안 오는 지원자들이 몇 번씩 반복됐다.
아무도 안 오는 회의실에서 혼자 지원자를 기다리면서 일을 하고 있다가 숨이 막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숨이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공황이 찾아왔다. 숨이 안 쉬어지는 기분은 많이 이상했다. 주변에서 인터뷰 당일에 아무 연락 없이 잠수 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그래도 몇 번씩 반복될 때마다 큰 상처가 되었다.
며칠 뒤, 지난달(3월)에 첫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무섭고 멋진 장면은 없고, 재무제표 확정과 대표자와 이사의 임금 정도를 확정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월 370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됐고, 마케팅을 하나도 안 했는데 토스, 배달의 민족, 라인 재팬, 스포티파이, 디즈니 플러스 등 유명 기업들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초기 팀원들은 최정예 드림팀으로 모시고 싶어서 진짜 좋은 팀원이 아니면 안 모시려고 한다고, 코 파운더들이 하고 있는 여러 일들은 아직 풀타임으로 일할만큼의 일이 안 나와서 모시기 애매하다고 말했다.
사실은 투자받기 전에 잔고가 없어서 나와 일다 님이 월급을 몇 개월 동안 안 받았을 때의 공포와, 처음 채용 실패를 했을 때의 고통이 너무 커서 겁이 났었다.
주주분들이 해준 말은 충격적이었다.
“대표님이나 CTO 일다 님 중에 한 분이 교통사고 나거나 다치면 회사 문 닫아야겠네요?”
“투자받은 뒤 4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잔고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매출이 초기치고 잘 나오고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팀원을 너무 안 뽑는 것 같다.”
“뽑아보고 실패해봐야 어떤 분이 필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
“대표님이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팀원 뽑는 것에 너무 신중해서 뽑지 않는 것은 말이 맞지 않다.”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나의 생각들이 모두 깨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6명짜리 시드 라운드 팀인데 이런 퍼포먼스 내는 팀 없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터라 이런 부족함을 지적하는 피드백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 피드백을 들었을 때는 조금 억울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맞는 말이었다. 정말로 나랑 일다 님 중에 한 명이 다치면 회사가 아예 문을 닫아야하는 상황이었다. 회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좋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맨날 실무를 하느라 고민을 깊게 하지 못했고, 그 부분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쭉 리스트업 해봤고, “대표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각각 던져서 살아남은 업무만 따로 추렸다.
생각보다 내가 지금까지 시간을 많이 쓴 업무 중에 대표로서의 업무는 너무 없었고, 학창 시절 때 공부하듯이 우직하게 실무를 했었던 것이었다.
대표가 해야 할 일(대표만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2P2M으로 정리됐다.
2P2M은 유튜브 존 잡생각 채널에 나왔던 개념인데, People, Product, Market, Money를 기반으로 부족한 부분의 자원을 가져오는 것이 대표가 가장 잘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좋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여유와 건강한 정신상태’ 임을 느꼈다.
일을 강박적으로 많이 하고, 잠을 줄여서 예민해진 상태로 팀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할 때 실수가 나오는 것보다 차라리 잘 쉬고, 잘 자고, 안 아프도록 건강을 챙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행복하면 안 된다고, 토할 만큼 고통스러워야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행복해야 하고, 여유 있어야 하고, 안 아파야 하며,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잘 사는 것’ 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약 2년 동안 지속한 크런치 모드를 종료했고, 내가 하던 업무를 나보다 더 잘해줄 분들을 모시기 위해, 팀원들이 일하고 싶고 행복한 팀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떤 것을 위해 최선을 다 해 일하고 있는지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 판별하는 질문이 바뀌는 순간이 찾아왔다.
도다 팀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서로 아끼는 마음으로 할 말 다 하는 팀원들로 구성되어있으며, 새로운 팀원을 소중한 마음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커피챗도 환영이니 편하게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