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가 되다!
서른여섯! 9개월 된 배속의 둘째와 함께 교사가 된 나
“편입을 한다고? 공부 못해 죽은 귀신이 붙었냐?
결혼 4년 차 어느 날...
인생의 두 번째 수능을 친다고 난리치고 폭망 성적표를 받은 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난 '특수교육과 편입'이 하늘의 계시같이 느껴졌지만 언니는 듣자마자 펄쩍 뛰었다.
"고만 좀 해라!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애 키우면서 살아!"
언니야~ 나도 진심 그렇게 살고 싶다!!
나도 한 때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사는 그런 멋진 삶을 꿈꾼 적이 있었다. 오전엔 스벅에서 커피 한잔하고, 오후엔 필라테스 하는 나를 보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마음 한편 저 구석에서 올라오는 무언가가 계속 나의 발목을 잡고 놔주질 않는데 어쩌라는 거냐!!
“언니 진짜 마지막이야, 나 이번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번엔 될 것 같아!”
왜 내 인생인데 언니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했을까? 기나긴 2년의 편입생활과 험난한 임고생(임용고시생) 인생을 축복 가운데서 시작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현실은 편입이란 말을 입에서 꺼내기 무섭게 '공부 못해 죽은 악귀'로 절락해버리고 말았다.
사람 참 이상하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다. 이미 악귀가 된 이상 편입이 더 하고 싶어 졌다. ‘애라 모르겠다. 떨어지면 말고!’라는 마음으로 편입원서를 접수하고, 드디어 면접날이 되었다.
“시각장애 중 녹내장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보세요”
“..... 교수님, 죄송합니다. 녹내장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합격하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혹시.. 통합교육은 공부해왔는데 말해볼까요?”
교수님이 피식하고 웃는 것이 보였다. 그때 ‘잘하면 붙겠는데?’하고 찌리릿!! 감이 왔다. 내가 누구냐! 간절함이 똘똘 뭉친 악귀!! 기회를 놓칠세라 주저리주저리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고 면접을 마쳤다.
한 20일쯤 지났을까? 대학에서 합격 문자가 왔다. 기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남편한테 어떻게 말하지? 4살 꼬맹이는 어디다 맡기지?'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이 밀려왔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등록금 낼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더 이상 물러날 때가 없었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온 남편을 잡고 말했다.
“여보. 나 편입했어”
“어? 편입! 네가?”
주말 부부로 지내서 금요일마다 집에 오는 남편한테 약장사처럼 급 친절을 베풀며 편입과 임용고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앞으로 지출하게 될 비용을 브리핑했다. 임용고시 부분은 반드시 합격할 자신 있다! 그리고 등록금은 내가 합격하면 다 갚겠다!라고 설득했다. 연예시절 계약직 인생에 대해 내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너도 알잖니. 이렇게 추억까지 팔아가며 설득을 해댔다. 그런데 답은 너무나도 쉽게 돌아왔다.
“합격하면 다 갚는 다고.. 네가 말했다”
“.... 응?! 아.. 그래.. 다 갚은 다니까..”
그렇게 33살에 나의 편입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엄마 임고생의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