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2년 전에 뇌 CT를 찍었다. 치매 초기가 아닌가 의심되는 사건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사건 1. 핸드폰이 사라져 온 집을 발칵 뒤집었다. 뜬금없이 냉장고 안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사건 종결.
사건 2. 차 키가 사라졌다. 출근을 못하고 1시간 내내 벌벌 떨며 집안을 헤집었다. 신발장 안에 덩그러니 놓인 차 키 발견. 사건 종결.
사건 3. 세탁 맡긴 옷이 사라졌다. 집에 있는 옷장이란 옷장은 다 뒤졌다. 체념하고 찾는걸 포기. 어느 날 내 차 뒷좌석에 처박힌 옷을 보았다. 사건 종결.
뭐 이런 식이다. 전과 2998범 정도 되며 유전적 결함도 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치매가 있으셨고 엄마도 뇌졸중으로 돌아가셔서 항상 나의 우뇌와 좌뇌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집 대도둑을 잡게 된 사건 당일도 처음엔 나를 의심했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일찍 퇴근한 남편이 '매우 한국적인 가장답게' 같은 아파트 사는 회사 친구와 술 약속을 잡았다. 외계인도 양심이란 게 있는지 두 딸내미와 햄버거 사 먹으라며 5만 원을 쥐어줬다. 가족 다음으로 ㄷ도도도돈(오타아님 '돈을 좋아한다' 고백해 떨리는 마음을 자판을 마구 눌러 표현함)을 좋아하는 나는 옳거니 받아 챙기며 화를 풀었는데.. 금요일 저녁과 맞바꾼 그 5만 원이 감쪽 같이 사라졌다!!
2시간 동안 또 그 지겨운 집안 뒤지기를 또 시작했다. 안방부터 거실, 컴퓨터방을 다 뒤졌다. 손에 비닐 장값을 끼고 종이재활용 쓰레기통도 뒤졌다.
아..나는.. 이 지겨운.. 집안수색을 언제 끝낼 수 있을까.. 신세한탄도 했다가.. 내 좌뇌 우뇌도 질책하면서.. 온 집안을 다 뒤졌는데.. 못. 찾. 았. 다.
급기야 내일 날 밝으면 도서관에 당장 달려가 반납한 책을 뒤져보기로 했다. 겨우겨우 심신을 안정시키고 한숨 돌리려 하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찾아보겠다 생각해 두 딸들한테 현상금을 걸었다. 5만 원을 찾는 자에게 10%를 떼어 5000원을 주겠다. 찾아보거라! 발표를 했다. 두 딸들은 '오예'를 외치더니 1분도 채 안돼 둘째 놈이 뭘 들고 온다.
우리집 동전을 다 퍼다 나른 둘째 어린이집 프로젝트! 천사의 지갑!
허허. 크게 될 놈일세! 간 크게 5만 원을 넣다니..
둘째 놈 어린이집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프로젝트를 한다. 신발 정리, 청소, 심부름을 하면 천사의 지갑에 용돈을 넣어주고 어린이집에 있는 큰 저금통에 돈을 모은다.
둘째는 '쨍그랑' 동전 넣는 손맛을 알아버렸고, 우리 집 복돼지 속 찰랑거리는 동전을 다 퍼다 나르더니, 그다음엔 천 원짜리가 다 사라졌고, 이제 간 크게 엄마의 비상금이 있는 서랍 속을 수시로 뒤져 5만 원짜리 지폐를 넣어버린 것이다.
허허 크게 될 놈일세!
나는 허탈해 웃고, 남편은 '기부나 사회복지 쪽 큰 손이 될 놈'이라 말하며 웃고, 큰 딸은 '너 그거 도둑이야'라며 웃고..
둘째만 빼고 다 웃었다.
어린이집 큰 저금통을 채워야 된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둘째에게 5만 원은 너무 큰돈이라 타이르며 약속한 현상금 5천원을 넣어줬다. 둘째는 색깔도 비슷해 그냥 그 돈이 그 돈이려니 하고 눈물을 멈춘다.
휴.. 놀란가슴을 쓸어 내렸다. 5만원을 찾아 다행이다. 내가 치매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손맛을 알아버린 우리 집 대도둑이 못 찾게.. 비상금을 넣어 둘 다른 장소가 필요하다. 낙동강도 팔아먹을 놈이다.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