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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Aug 06. 2020

마흔 하나에 또 시험공부

해외파견교사를 준비하며

꿈이 있다. 바로 해외파견교사가 되는 것.

몇 년 전, 학교에서 공문을 뒤지다 우연히 해외파견교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채용공고를 읽어 내려가는데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이 나 긴장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교사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지 12년 만에, 취업 때문에 온갖 속앓이를 하다가 막차 타듯 겨우겨우 임용이 되었다.


큰애가 4살 때 초등 특수교 편입해 공부하는 엄마로 살았다. 아이가 노 어린이집 차를 타고 등원하면,

"엄마 학교 다녀올게~"

씩씩하게 손 흔들고 편입대 수업을 들으러 갔다.


공부한다고 교사가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하고 싶었다. 안 하면 호호 할머니가 돼서도 후회할 것 같아서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포기가 안었다.


'결혼했으니 이제 편히 살아라'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살아라'

'애 엄마가 애를 키워야지.. 어린애를 남의 손에 맡기면 되니?"

'공부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냐 그만 좀 해라'

'그러다 배속에 있는 애 잘못된다.'


친정에서 등짝 맞아가며 오가지 소리를 다 들었다. 백이면 백. 걱정돼서 그만하라고 말리는 말들었는데..


성이 고집쟁이라서 그런. 아니면 청개구리를 삶아 먹었는지.. 주변에서 말리면 말릴 수록, 간절한 마음은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했다.

왠지 모를. 마음 한 편의 그 무엇이. 포기할 수 없게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난리부르스를 치고, 36살 배속에 둘째를 담고 교사가 되었다.

만삭의 D라인 신규교사 된 지 딱 3년. 이제 발령이 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흔을 코앞에 둔 햇병아리 교사가 그만 또 가슴이 쿵쾅거리는 꿈주하게 됐다.


일본으로 파견을 다녀온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선생님 어떻게 준비하면 돼요?"

"특별히 잘하는 게 있으면 좋아요. 컴퓨터를 잘하는 남자 선생님은 학교에서 인기가 많더라요. 바리스타 자격증이나 손재주가 있으면 도움이 되고요. 아참! 한국어 교사 자격증도 많이들 취득해요. 토익점수가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까 공문 나오면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 나라 언어도 공부하시고..."

"아.. 공부할게 참 많네요.."


이걸 어쩌면 좋을까. 배워야 될 것, 공부해야 될 것들이 또 한꺼번에 쏟아진 기분이다.


남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 타고난 손재주, 특출 난 솜씨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때문에 잘하고 싶으면 노력해야 되고, 배워야 아는 사람. 그게 바로 나인데 말이다.


휴.. 임산부일 때 임용고시를 봐서.. 공부라면 '마ㅜ해라!! 마이 했다 아이가!!' 외치고 싶은데.. 또 공부를 해야 하는 꿈을 만나다니...


 덕분에 마흔에 시험공부를 했다. 준비하는 시험은 한국어 교육능력 검정시험!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주는 시험이다.


작년에 필기시험은 합격했는데 면접시험에서 똑 떨어졌다. 면접에서는 응시자의 20%만 떨어진다는데 꾸역꾸역 그 20프로 안에 들어서 심쿵하게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또 마흔하나에 공부를 한다.


오늘이 시험공부 첫날이다. 올해는 합격하길 간절히 소망하며, 절도 있게 공부에 임하려고 한다.(머리에 흰띠를 두를 수도 있다. 그만큼 결의에 참!)

올해는  홧팅!

바리스타도 도전해볼 참이다. 원래 커피맛을 모르는 사람이라 노랑 봉지 커피를 제일 좋아한다. 출근 후 믹스 커피를 한잔 마셔야 힘이  꾸준히 마시는데 이제는 커피맛도 배워볼까 한다. 이것도 배움 하나 추가.


집에서 떡 만들기를 도전해 볼까 생각 중이다. 해외에 나가면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니까 외국인에게 한국 음식도 대접할 수 있어야 될 것 같다. 나도 먹고 싶을 때를 대비해야 되니까 음식은 필수다. 또 추가.   


토익도 따 놓아야 될 것 같다.

회화도 더 잘해야 될 것 같다.

....

 A4 한 장이 될 수도. 후덜덜.

 

해외파견 교사를 준비하려면 배워야 될 것, 공부해야 될 것이 끝도 없이 추가되겠지만 좋아서 하는 거니까 설레는 마음으로 차근차근해보려고 한다. 교사도 12년이나 걸렸는데 뭐. 한해 한해 조금씩 준비하면 반백살 전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


꿈은 우연히 나를 찾아왔고, 갑자기 너무 하고 싶어 시작해버렸다. 자격증 시험도 한 번 떨어졌지만, 또 용기 내어 도전한다. 


인생이란 만나고 부딪히는 모든 우연들이,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해지면 필연이 되는 것이니까. 나는 오늘도 이 설레는 마음을 잡아, 내 옆자리에 꾹꾹 앉혀 볼 참이다. 어쩌다 마주친 마흔 살의 꿈을 내 인생의 필연으로 만들어 볼 참이다.

손절하고 싶은 공부를 또 하고 있다(출처: upslash  사진 수정사용)

배워야 할게 한 줄 한 줄 더 추가되면 어떤가. 공부할 거 많은 인생 좀 살면 어떤가. 그게 하고 싶은 거나답게 달팽이처럼 느린 발걸음이라도 힘을 어 앞으로 나아가 볼 참이다. 천히. 숨 막히거나 압도되지 않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그래서 나는.

마흔에도, 마흔한 살에 공부를 한다.

들면 쉬어가면서, 그러나 이루고 싶은 곳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씩 가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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