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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Jul 01. 2020

고객님, 144개월 할부로 '고단함'이 결재되었습니다

12년만의 취업

  년 봄, 취준생이었던 30대 여성이 부모님 앞에서 분신해 숨졌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고단했으면..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 마음을 조금은  알고 있기에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내 삶이 다 끝나는 날, 신께'너의 삶 중에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 물으신다면.. 난 단연코 '입에 풀칠하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랑이 제일 어렵다는 사람도 있고 다이어트가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취업이 정말이지 하늘만큼 땅만큼 힘들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3년 동안 번듯한 직장을 노렸지만 서전형부터 최종면접까지 떨어지길 수십 차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지요. 그러나 내 궁둥이 한 짝 걸칠 사무용 의자 하나와 멍한 시선이라도 꽂아 넣을 한 뼘 책상 었습니다.


취업에 실패한 것인데 내 인생까지 실패한 것 같아 하루하루가 진흙탕이었고, 나 자신은 흙구덩이를 파고드는 미꾸라지 같이 느껴졌습니다.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확인하면 어김없이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실패의 파도가 철거리면 자신감 모래처럼 쓸려나마음은 텅 비었습니다. 덧난 상처의 고름처럼 은 자리엔 쓰라림우울함 잔뜩 고였습니다.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파지더라구요.


딱 3년을 도전하고 스스로 마침표를 찍으니, 한 달간 자리에 몸져눕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못하겠고 자존감도 바닥이었습니다. '입에 풀칠만 하려는 것뿐인데... 나 하나 먹여 살리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그즈음에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 하나둘씩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번듯한 직장도 부럽고, 쥐꼬리만 하다는 정규직 월급도 부러워 죽겠는데, 가장 못 견디겠는 것은.. 나만 원밖에 나가 서 있는 기분, 소외감었습니다. 때쯤 머릿속에선, 엄마가 알면 통곡하실 생각 주머니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높은 빌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담담한 음으로 이런 생각했죠. '저기서 떨어지면 한방에 죽을 수 있을까? 바닥에 닿을 땐 아프겠지? 몇 초나 걸릴까..' 그리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달 동안 절망과 좌절의 계곡을 지나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렇게 누워있는 것도 호사지. 번듯한 직장이 아니라도 좋다. 계약직이라도 일해서 돈을 벌자' 생각했습니다.


쫓기듯 열심히 살았습니다. 나만 아는 초조함과 두려움 있었기 때문이죠. 그것은 가슴 깊이 뿌리 박힌 '생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어릴 때 아빠가 돌아가셔서 떠난 이 뒤에 남겨진 가족의 고단함을 압니다. 남은 사람의 어깨에 가족들의 생계가 지워지지요. 그래서였는지.. 마음속 초시계는 째깍거리며 어서 빨리 정규직이 돼야 된다고 저를 재촉했어요. 그래서 야근도 자처하고 휴일도 반납하며 정규직 전환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을 부려도 안 되는 일이 있더라고요. 저는 끝내 정규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습니다.


첫 아이를 낳았고, 보통의 계약직 여직원이 그러하듯..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엄마로 살기 시작한 어느 날 새벽, 울음소리에 깨어 젖병을 물리고는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한 손으로 젖병을, 또 한 손으로 내 손가락을 꽉 잡고 있더랬죠. 어찌나 힘을 주어 잡는지 장난으로 뿌리치려 하니 더 꼭 잡더라고요. '내가 뭐라고 이렇게 의지하고 사랑을 줄까..' 하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내가 아이를 안은 건지, 우리 딸이 나를 안아준 건지.. 태어난 지 몇 개월 안된 아이를 끌어안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내가 뭘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고단했던 삶을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더군요. 그리고 오래된 두려움을 꺼내 보았습니다.

 

'내가 할 수는 있을까.. 스무 살 때도 못했던 것을.. 삼십 대에.. 애까지 있는데.. 정말 취업할 수 있을까.. '

그런 흔들림과 불안함은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크고 강한 간절함이 나를 자극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나를 먹여 살리는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없어도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직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입에 풀칠하기'에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세월 흘러 저는 36살에 둘째를 품은 만삭의 몸으로 특수교사가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합격한 동기와는 12년 차이나는  띠동갑입니다. 144개월 동안 난 뭘 했을까요. 3년 동안 취업 실패, 인턴 3개월, 계약직 1년, 또 계약직 4년 11개월, 수능 실패, 편입, 0.02점 차로 임용 실패. 그리고 입용 합격.


남들보다 뒤처지고 모두 실패한 날처럼 보였지만 러날 곳이 없어서, 살기 .. 그냥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벼랑 끝에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딸의 작은 손이 나를 잡아주어서.. 부모가 되고 보니.. 느껴지는 책임감과 생계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나를 간절히 바라던 정규직으로 만들어 주었네요.


모든 실패는 아픈 것 같습니다. 칼에 베어도 아프고, A4 용지에 베어도 아픈 것처럼요. 실패가 작든 크든 아무렇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크게 넘어지든 작게 넘어지든 나는 넘어졌고 분명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들 잠식될지 아니면 두려움을 딛고 다시 도전할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지요? 깜깜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인생의 순간들을 뒤돌아보니.. 아프다고 두렵고 무섭다고 주저앉았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찔합니다. 삶이 나를 휘몰아치고 밀어붙이면 그 바람을 등지고 더 나아가 보세요. 벼랑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하고, 태풍이 날 덮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짝이는 햇살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모두 다른 인생을 살지만 그 누구의 인생도 시작과 끝이 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은 하루하루와 연결되어 있구요. 인생은 날씨와 같아서 항상 쨍한 날만 있지도.. 끝없이 흐린 날만 있지도.. 않습니다. 앞으로도 남은 인생 동안 실패할 일이 분명 있겠지요. 하지만 무서워하지는 않으려고요. 인생이 날씨와 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랍니다.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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