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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May 13. 2020

어미가 되기로 했다

  그때부터 인 것 같다. 내가 어미의 세계로 첫발을 들이게 된 것이..

  

 "갑상선에 결절이 있네요. 알고 계셨죠? 크기가 꽤 큰데."

  몰랐다. 결절이란 단어가 세상에 있는지도 그날 처음 알았다.


 "소견서 써줄 테니까 전문 병원으로 가보세요."

 "10시까지 갈 때가 있는데요..."

 "가보셔야 됩니다."


 남편 회사에서 배우자 건강검진을 공짜로 해준다고 해서 좋아했다. 원뿔원이라니! 물티슈 한 박스 시킬 때도 최저가를 찾고 쿠폰을 꼭꼭 챙기는 나다. 몇십 만원 하는 강검진이 공짜 땡큐다!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사스러운 건강검진을 받아봤다. 그런데 결절이라니..


 토요일 애들 자는 틈을 타서 새벽 7시에 찬바람 맞으며 나왔다. 건강검진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오전 7시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날은 둘째 어린이집 학예회가 있는 날이었고 검진하는 내내 늦을까 봐 발을 동동 굴렸다. 마지막 검사인 수면 내시경을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왔다. 따로 의사 선생님을 만나야 된다고..


  난 생활력이 강한 편이다. 중1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세상이란 큰 파도를 맞설 용기도 여력도 없는 소녀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랐다.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상 모든 딸들의 머리를 한 번쯤은 스쳐갔을 법한 그 생각의 씨앗이 내 머리에선 벌써 굵은 나무가 되어 자랐고,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칠 줄 모르는 불도저 같은 아이로 자랐다.

  코딱지만 한 계약직 월급으로 동생 등록금을 악착같이 모으고 엄마 용돈 드렸다. 가스비 전기세도 내가 챙겼다. 동생 대학 원서도 내가 썼다. 모든 것을 내가 다 책임지고 내가 다 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아이가 생기자 너무 겁이 났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생계... 혹시 남편이 우리 아빠처럼 빨리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점점 커져 두려움이 되었다. 나 하나 먹여 살리기도 잔뜩 힘이 들었는데 이제는 아이까지 책임져야 된다. 편이 건강할 때 보험 든다 생각하고 정규직으로 취업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공부를 했고 배속 둘째를 품은 지 9개월 차에 임용고시를 합격했다. 그리고 이제 5년이 지나 살만해졌는데 갑상선 결절이라니..


  내 목에 작은 혹을 발견하게 된 그날.. 그 날 이후로 나는 많이 달라졌다.


  소홀히 했던 나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이제부터라도 예쁘게 살게 해 주고 싶었다. 다이어트를 해서 1년 만에 10.9kg 감량에 성공했다. 비싼 옷도 사봤다. 사고 싶었던 쥬얼리도 샀다. 머리도 길고 염색도 했다.


  그리고..

  큰 애가 다니기 싫다는 3년이나 공을 들인 비싼 영어학원도 당장 끊어줬다. 큰 애의 성공이나 행복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책임이 아니다. 내가 다 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우리 아이들도 잘 자란다. 처음으로 너무 홀가분했다. 온통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가 다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들이 내 품에 있을 때 잘 먹여 살리고, 독립하게 됐을 때 두 다리로 설 수 있게 응주는 어미 되면 다.


*엄마 : 자녀를 품느라 나를 잃어버린 헌신과 희생의 아이콘

*어미 : 새끼의 독립을 응원하는 모체적 느낌

  -점프의 머릿속 사전 中-


어미가 된다는 것은 기분 좋고 설레는 느낌이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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