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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Oct 19. 2020

모두.. 내가 정신을 잃은 탓이다.

첫 만남.

전쟁 중이다. 외계인과 4일째 말을 안 하고 있다. 다툼을 핑계 삼아 집안일을 내팽개치니.. 몹시편하다. 쭉 이렇게 살면 천국이겠구나~ 생각을 했다가도 까칠한 초5학년 토끼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여섯 살 난 작은 토끼가 눈에 밟혀.. 이렇게 단란하게.. 딱 일주일만 살 작정이다.


남똘과 나는, 도대체 왜 같이 살게 된 걸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모두.. 내가 정신을 잃은 탓이다. 눗방울이 탁 터지듯 멍한 기운에서 벗어나니, 레드카펫 위에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남사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예식장에 서 있었다. 환하게 웃면서 말이다. 홀린다. 시아버지를 빼다 박은 저 생뚱맞은 인간과 백년가약을 맺다니.. 결혼은 미친짓이다.




눈이 마주쳤다. 실장님 몰래 손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정성스럽게 쓸어 올린 마스카라를 한 올 한 올 점검하고 있는 그 찬란한 순간에, 웬 황토색 거적때기를 뒤 짚어 쓴 남자가 내 뒤에 서 .


'아. 깜짝이야. 뭐야 저 간은.. '

눈이 마주쳤다. 그 거울 안에서.  


연속되는 우연은 필연을 낳는다. 필연이라 생각되는 사람들과 우리는.. 인연을 맺는다.

그 손바닥만 거울이, 아무런 쿵쾅거림도 없이..  앞으로 3년 후 인연을 무심하게 예고하듯.. 그렇게, 찰나의 우연을 만들주었다.





마음에 문턱이라는 게 있다면. 난 조금 높은 편이다. 일단 B형이라 타고난 까칠함이 있다. 게다가 세상 풍파를 좀 맞아봤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친척들 아주 고소한 콩가루폴폴 날리는 집안에서 자랐다. 엄마가 법앞에서 이모한테 우산으로 맞았다며 온 허벅지를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온 날. 그때부터 마음에 벽돌을 한 장 한 장 올리기 시작한 것 같다. 어쨌거나.. 인생의 크고 작은 사건 덕에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고, 정을 주지 않으며, 에고가 아주 강한 른으로 자랐다.


대학교 교직원이 되었다. 3년간 취업 실패를 겪고 몇 달간 와상 생활을 한 후라 계약직도 감사했다. 처음으로 사무실이란 곳에 출근하니 뭔가 심장이 쿵쾅거다. 내가 맡은 업무는 국제교류사업과 인력양성사으로 건축학과, 의대, 조경학과, 임상 공학과의 석박사 과정생들을 지원하는 업무였다. 오우~ 건실한 청년들 지천에 깔려 있었는데~ 망할!! 감사한 줄 모르고 일만 했다;; ㅉㅉ


사무실은 아담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실장님 자리가 아지트처럼 안쪽에 쏙 들어가 있다는 것. 실장님은 그 시절 박사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그 고매한 논문이라는 게 적잖게 괴롭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자리를 한쪽 벽 코너로 몰더니 캐비닛으로 둘러막아 버렸다.

'오~ 땡큐~'

동굴 같은 그 자리에서.. 그가 일을 하는지 or 박사 논문을 쓰는지는 내 알아니었으나.. 다만 그의 기행이 내게 자유를 주었고, 난 매우 감사할 따름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여직원은 나보다 3개월 먼저 들어왔으나 3년 차 선배마냥 잔소리가 많았다. 그녀가 은행을 간 사이. 드디어 혼자가 되었다. 물론~ 실장님은 계셨지만 아지트에 콕 박혀 나오질 않..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 드디어 온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거다. 


마스카라가 한 올 한 올 잘 덮어졌는지 세월아 월아 나의 속눈썹에 집중하고 있을 때... 사무실 문이 스르륵 열렸나 보다. 유령같이 그가 들어 거다.


'아. 깜짝이야. 뭐야 저 간은.. '

그가 바로 남똘이다.  


넌 어디서 왔니?
외계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삼디다스에나 들어갈만한 또렷한 흰색 줄이 황토색 잠바 어깨부터 소매까지 늘어져 있다.

와 진짜 뭐 저런 잠바를 입냐.. 하려던 순간. 15년 전에 우리 아빠가 입었을 법한 기지 바지가 눈에 들어온다.

진짜 뭐냐.. 나눔을 받아 입었? 지금 그 잠바와 바지가 어울린다고 생각? 하려는 순간. 그의 구두가 들어온다.

이분 정말.. 1%의 노력도 패션에 쏟지 않는구나. 이 조합에 구두는 좀 아니지 않을까..  도대체 넌 누구냐!! 얼굴 좀 보자.. 라며 눈을 치켜뜨니.. 그의  빗자루 같은 머리 눈에 들어온다..


오 마이 굿니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눈이 그를 위아래로 다시 한번 훑었다.

당신이 아담도 아니고.. 에덴동산에서 방금 뛰쳐나왔데도 이런 거적때기는 아니었을 것 같다.. 몸서리가 졌다.


'사람이.. 저렇게 입고 다닐 수.. 있는 거구나.. '


그때 실장님이 동굴에서 소리를 치신다.

"어.. 철수(가명) 왔어? 들어와~ 점프씨 여기 커피  잔만 부탁해~"

실장님이 동굴에서 마늘 논문을 뿌리째 드셨나보다. 인기척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걸 보면 말이다.


그.. 그런데... 뭐? 철수? 그럼 저 인간이 며칠전 나랑 전화로 한바탕 싸 그놈이란 말이지.. 그래 너 어디 두고...




대문사진: 무한도전 무한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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