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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Jun 18. 2020

외계인과 결혼해 무지개빛 딸을 낳았다

 첫째는 유난히 눈물이 많다. 하루에 두 번쯤은 눈물을 흘려주고 잠자리에 든다. 첫째가 우는 이유는 무지개 빛깔만큼이나 다양하지만 눈물의 기폭제를 만드는 건 항상 애아빠다. 편은 첫째의 반짝이는 예쁜 면을 칭찬하기보다 일곱 색깔만큼 다양한 이유를 찾아내 콕콕 집어 잔소리를 하는 희한한 취미가 있다. 그러면 어김없이 첫째의 수도꼭지가 열린다.(남편 외계인설: 남편은 지구인과 다른 생각을 하고 지구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이다. 나와 딸에게는 보이지 않는 물건이 남편에게는 잘 보이는 게 가장 문제다. 항상 정리가 안 된 채 발견되는  물건이 원흉의 씨앗!!)


남편이 아이를 혼내면 나는 주로 딸 편이 돼서 잔소리 화살받이를 해준다. 나는 딸의 마음이 100%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아빠를 닮고 알맹이는 나를 닮은 큰 딸은 일부로 안치운 게 아니라 눈에 안 보여서 안 치우는 거다. 눈이 자동으로 필터링 시켜주는 물건들을 굳이 찾아내서 정리하는 게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우리 집 외계인이 모른다.


딸이 혼나서 울면, 이런 상황이 속상하다기보다 남편의 마음이 궁금하다. '복붙'(복사해서 붙여 넣기)해놓은 것 같이 자기랑 똑같이 생긴 미니어처를 왜 저렇게 무서운 얼굴로 혼낼까.. 이런 딴생각을 해본다. 나 같으면 볼때기에 쪽쪽 뽀뽀를 해주며 '너는 내 주니어다' 이러면서 이뻐할 텐데.. 역시 외계인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


나는 딸을 위로해줄 때 '울지 마'라는 말을 잘 안 한다. 대신 '울고 싶으면 울어 그래야 시원해' '엄마가 샌드백 사줄까? 화풀이하게?' 이런 말을 한다. 한 번은 작정하고 샌드백 쇼핑을 갔는데 딸이 화풀이 대상으로 코끼리 인형을 골랐다. 프로이트 오빠가 빙의돼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했지만 지식이 짧아 그만두었다. 어느 날은 집에 가보니 코끼리 인형에 바람이 빠져 흐물 댔다. 이번에는 셜록홈스 오빠가 빙의돼 나 없는 사이 애가 사이코틱하게 코끼리 인형을 패는 장면이 떠올라 무섭기도 했다.   


이렇게 키우는 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아보니까 참는 것보다 우는 게 좋았고, 마음이 맞아 아픈 날은 뭐라도 때려야 시원했다. 당했다 생각하면 참아서 꾹 누르는 것보다 이불이고 베개고 패야 풀렸다. 그래서 딸한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딸아. 엄마는 알고 있단다. 네가 나이가 들면 집 밖에서 울 일이 많아질걸 말이야. 화장실에서 엉엉 울 일도 있고.. 눈물을 참다가 콧물을 훔칠 때도 있을 거고.. 친구랑 한잔 중에 질척거리며 울 수도 있고.. 동생이랑 통화하다 센티해져 울기도 할 거야. 그런데 엄마는.. 네가 다른 곳에서는 참아도 집에서 만큼은,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면 좋겠어. 집은 안전하단다. 마음껏 울으렴. 대신, 하늘도 운 다음에 무지개를 내어 놓잖아. 맘껏 울고 너의 무지개를 찾아보렴. 엄마는 네 반짝이는 무지개가 지금도 보여 쪽쪽 뽀뽀해주고 싶단다.
엄마는 지금도 너의 무지개가 보여(사진출처:unsplash)



*대문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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