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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Jun 21. 2020

 팥죽 한 그릇, 엄마생각 한스푼

  사람을 품은 음식들이 다. 그 음식을 떠올리기만 해도 별한 사람이 생각난다.

짜장면에 탕수육은 아빠, 더덕 불고기는 할머니, 색색깔로 고명을 얹은 큰 생선은 결혼 허락받으러 온 형부가 떠오다. 마가 생각나는 음식도 있다. 찰밥과 잘 어울리고, 막 묻힌 아삭한 겉절이와 같이 먹으면 환상의 궁합인 팥칼국수와 달콤한 팥죽. 가끔 이 팥죽이 갈증 나도록 생각다.




 삼대독자 집에 넷째 딸로 태어나려면 타고난 외모와 끼를 갖춰야 한다. 내가 태어난 날은 '뒤바뀐 주인공'을 찾는 분위기였다. 아빠는 태어났어야 할 아들을 찾으러 집을 나갔고, 엄마는 울고, 딸1 딸2 딸3은 숨죽이고 있었다. 사태 수습을 위해 아들만 셋 있는 이모가 딸4를 본인이 키우겠다고 나섰다. 이모와 엄마가 계약 체결을 위해 한참 설전 중일 때, 딸1이 이제 태어난 딸4를 빼꼼히 내다보니.. 세상에.. 캭~ 애가 너무 못생겼다. 산모도 아이를 본다. "못생겨서 내가 키워야겠다." 이게 나다. 부모 손에서 자라기 위해 생김을 장착하고 태어나다니.. 자라면서 예뻐지려고 성형을 100번 했다는 뻥이고, 그냥저냥 살다 보니 세월이 돌려 깎기를 해줘서 지금의 얼굴이 되었다.


 다음으로, 나의 필살기! 나의 숨은 끼!는 바로 집 나간 아빠도 돌아오게 만드는 '애교'다.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쪼매난 못난이가 애교가 뚝뚝 흐르는 얼굴로 예쁜 척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애교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았다. 눈치도 빨랐던 것 같다. 나는 엄마 껌딱지이었는데 특히 엄마가 시장 가실 땐 거머리같이 찰싹 붙었다. 시장에 따라가야 무언가를 '득'할 수 있다는 걸 영특하게도 일찍 깨우쳤기 때문이다.


 시장은 입구부터 유혹 천지다. 시장 입구에는 꽈배기 가게가 있었다. 난 그 꽈배기 집에서 파는 야채빵을 무지 좋아했다. 잘 튀겨진 빵 사이에 야채 샐러드가 듬뿍 들어가 빵이 잘 오므려 지지도 않는다. 그 위에 케첩을 물결무늬로 짜면~ 이건 정말 엄마한테 떼 안 쓰고는 못 베기는 잇템이. 두 번째 관문은 건너편 머리끈 파는 리어카다. 밑져야 본전이니 머리끈도 한번 졸라 본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퐁퐁이(트램펄린)와 목마가 있는 작은 공터가 나온다. 운이 좋으면 100원 넌치 퐁퐁이와 목마를 타며 장보고 돌아오실 엄마를 기다린다. 운빨이 늘을 찌르는 날은 바나나도 먹었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지만 ^^


 그런데 가끔 다 안 통하는 날도 있다. 야채빵도, 머리끈 리어카도, 퐁퐁이와 목마도 다 안된다고 하신다. 그럼 하는 수 없이 엄마를 따라 시장 거의 끝자락까지 들어간다. 옷가게, 신발가게를 지나 더 깊숙이 들어가면 포장마차 같이 비닐 천막으로 지어진 작은 가게가 있었다. 바로 팥죽가게. 팥죽가게는 주황빛 비닐 천막으로 지어져 꼬맹이인 나한테는 약간 음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인 할머니한테 팥죽을 시키면 엄마 얼굴이 다 들어갈 것 같은 세수 대야만 한 그릇에 팥칼국수가 나온다. 팥죽이 나오면 엄마는 설탕을 듬뿍 넣어 단맛을 맞추신다. 전라도식이다. 나는 달콤한 국물만 수저로 호호 불며 홀짝거리고 엄마는 스뎅 그릇에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딱딱' 들리게 마지막 국물까지 다 드셨다. 같이 나온 찰밥은 내 차지가 된다. 엄마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면 내 머릿속선 야채빵이 둥둥 떠다녔고, 가는 길에 다시 한번 졸라 볼까? 말까?를 고민하며 애꿎은 팥죽만 휘휘 저은 생각이 난다.


 엄마도 가끔 집에서 팥죽이 땡기는 날이 있으셨던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일도 없지만 80년대는 쌀 말고는 딱히 배달이 없던 시절이라 팥죽 심부름학생인  몫이였다. 미션은 손잡이 달린 양은냄비를 쥐고 시장 끝자락까지 가서 팥죽을 사 오는 것! 그 난 '배달의 딸내미'가 된다. 심부름 값은 남은 잔돈 갖기! 목숨 걸고 했다. 남은 돈으로 호떡집 옆에서 파는 시장표 500원짜리 햄버거를 사 먹으려고^^ 그때는 야채빵에서 햄버거로 내 취향이 up 되어 있었다.


 엄마는 가끔 팥죽을 집에서 만드셨는데 그러면 우리 다섯 남매는 바쁘다. 큰 언니는 쟁반을 챙기고, 둘째 언니는 TV를 켜고, 셋째 언니는 엄마가 건네준 쌀 반죽을 들고 거실로 온다.  다 만든 새알을 넣을 큰 그릇을 찾아온다. 남동생은 손을 안 씻고 와서 등짝 한대 맞고 다시 손 씻으러 간다. TV를 보며 팥죽에 넣을 새알심을 만드는 일은 정말 재미있다. 동그랗게만 만들면 다 큰 거다. 대학생, 고등학생인 첫째, 둘째, 셋째 언니는 엄마가 주문한 사이즈에 딱 맞게 새알심을 제작한다. 코흘리개인 나와 남동생은 그때부터 아트를 한다. 토끼 모양, 반달 모양, 로봇 모양. 공룡모양 등 별의별 모양이 다 나오는데 완성된 팥죽에서 내 작품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엄마가 만든 팥죽은 부드러운 국물에 가끔 씹으면 통하고 터지는 팥이 듬성듬성 들어 있었다. 설탕으로 단맛을 조절하는데 남동생이 그때부터 설탕 성애자가 된 것 같다. 다섯 남매가 동그랗게 둘러앉아 팥죽을 먹으면 누구의 국물이 더 맛난 지 서로서로 떠먹어본다. '내 껏이 더 맛있네', '니껏은 별로다'를 다 먹을 때까지 계속하다가 결론은 항상 하나다. '남동생 껀 너무 달아 못 먹겠다'로 끝난다.


 엄마가 만든 최고의 팥죽은 고3 때 먹어본 팥죽이다. 교복 동복을 입을 때였으니 아직 쌀쌀했던 때였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따뜻한 팥죽을 내어 오셨다. 엄마가 이렇게 요리를 잘하는 분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팥알이 탱탱하게 톡 씹히고 국물도 어찌나 보드랍든지. 땡글땡글 새알을 입에서 굴리서 서서히 녹여가면 끈적한 찹쌀이 입천장에 딱 달라붙는다.

"이거 엄마가 만든 거 맞아?"

"이거 엄마가 만든 거 맞아?"

"이거 정말 엄마가 만든 거 맞아?"

 ".....^ㅡ^"

엄마는 말이 없으셨지만 씨-익 웃고 계셨다.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아마 눈에 담고 계셨을 거다. 이제 내가 그 마음을 안다.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온지 6년째가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는 12년이 되었다. 전라도가 고향이라 엄마 느낌 폴폴 나는 팥죽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이사 온 첫해에 남편을 졸라 팥죽집에 갔다. 팥칼국수를 시켰는데 사장님이 설탕을 안 주고 소금만 주셔서 너무 깜짝 놀랐다. 아~ 경상도는 짭조름한 맛으로 팥죽을 먹는구나~ 한두 숟가락 떠먹다가 쭈뼛쭈뼛 일어났다. 경상도 팥죽은 맛있지만 그 맛이 아니라서 너무 아쉽다. 주방 이모에게 '설탕 좀 주세요~'하고 부탁했다. 주방 이모도 내가 전라도 출신이란 걸 알았는지 찡긋 웃으며 설탕을 내주셨다.


 몸이 아플 때도 팥죽이 먹고 싶다. 죽집에서 팥죽을 시켰더니 팥죽에 밥알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먹은 팥죽은 새알 팥죽과 팥칼국수가 전부였는데 팥죽에 쌀이 들어가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잉ㅜ 엄마 팥죽이 너무 그립다. 팥죽에 밥알이 없었으면 좋겠다. 짭조름한 맛이 아닌 달콤한 팥죽이 너무 먹고 싶다. 온기가 빠진 찰밥과 같이 먹는 게 일품인 팥칼국수가 땡긴다. 안 되겠다 한번 먹으러 가야겠다.


 수소문을 순천에 있는 맛있다는 팥죽집을 찾았다. 가게에 미리 전화해 2인분 포장을 주문했다. 동생네 집에 와서 포장을 풀고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니 '그 맛이다!' 다 같이 먹으려고 2인분을 사 왔는데 먹다 보니 앉은 자리에서 혼자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내가 너무 맛있게 먹어서인지 다들 괜찮다며 더 먹으라고 한다. 콤한 팥죽 너무 맛있 입천장이 데인 줄도 모르고 먹었다. 그 텁텁하고 걸쭉한 단맛이 일품이다. 그리웠던 그 맛이다. 두 번째 포장을 풀고 반 그릇나 더 떠먹었다. 휴 살았다.


 한 밤 자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국수집에 갔다. 남편과 아이들은 바지락 칼국수를 시키고 나는 팥칼국수를 시켰다. 찰밥이 작은 그릇에 담겨 애피타이저로 나왔다. 반찬으로 나온 겉절이와 부추 무침이 너무 맛있어서 조금만 종지 안에 담긴 찰밥을  한 그릇 더 먹었다. 역시 전라도라 팥칼국수의 간 맞추라고 소금 대신 설탕을 주신다. 마음껏 먹었다. 먹고 싶은 만큼 먹으니 갈증이 풀린 기분이다


 마흔이 넘으니 팥죽이 그리워 전라도 맛 기행을 한다. 이제 돌아가신 엄마가 좋아했던 팥죽을 나도 좋아한다. 팥죽 이야기를 자꾸 하니 또 팥죽이 먹고 싶다. 히히. 오늘 점심에는 두 딸들과 같이 팥죽 한 그릇 해야겠다. 나는 엄마처럼 얼굴이 들어갈 것 같은 그릇을 들고 마지막 국물까지 싹싹 비울 것이다. 그러면 요 녀석들은 애꿎은 팥죽만 휘휘 저으며 머릿속으로 햄버거를 상상할 수도 있겠지. 두 딸은 크면 나를 무엇으로 기억할까? 또 모른다. 내가 오늘 팥죽 한 그릇을 맛있게 뚝딱하면, 딸들 기억속에서 나를 품은 음식이 팥죽이 될수도.^^ 


대문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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