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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Jun 06. 2020

아빠에게

아빠

너무 오랜만에 불러봐서 이상한 기분이에요.


그날...


체육시간이라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데

사촌오빠가 나를 데리러 왔어요.

집에 와보니 아빠 주위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고요.


그래도 난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남동생은 그날이 소풍날이었는데 아마 걔도 뭐가 뭔지 몰랐을 거예요.

초 5학년이 뭘 알겠어요.

중 1도 모르는데


입관식에서 서울 이모가 '형~부'하며 우는데

이모는 왜 울까 생각해봤어요.

어차피 아빠는 다시 일어날 건데

난 아빠가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보트처럼 관 뚜껑을 강펀치로 날리며 다시 일어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관 뚜껑에 나무못을 박더라고요.

아빠 나오기 힘들게 왜 그런 걸 박는지 모르겠어요.


동생이 아빠 사진을 들고 산으로 걸어갔을 땐

재는 창피하겠다 사람들이 쳐다봐서..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나는 우리 반 애들하고 담임선생님이 상복 입은 나를 쳐다보는 게 창피하고 싫었거든요.


흙 한 삽을 떠서 관위로 뿌리는데, 저는 하기 싫었어요.

흙이 나무 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요.

그리고 관이 더러워지는 것 같아 싫었어요.

흙은 더럽잖아요. 닦아 내야 되는데 아빠가 들어 있는 관에 뿌리는 게 싫었어요.


집에 돌아오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엄마가 장롱 앞에서 뭘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엄마 뒷모습만 기억나요.

엄마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학교에 다시 오니 담임선생님이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며 국어 문제집을 줬어요.

내가 '집에 있어요'라고 말했는데 그래도 가져가래요.

저는 그 문제집을 교실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아빠가 없어졌다고 갑자기 불쌍하게 대하는 게 싫었거든.


내 뒤에 앉은 애는 더 어렸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데요.

아빠가 생선을 먹었는데 목에 가시가 걸렸데요.

친구 아빠는 그냥 생선 가시가 목에 박힌 채로 주무셨는데

자는 동안 목이 부어서 숨을 못 쉬게 되어 돌아가셨데요.

그 애 말을 듣고 '사람이 그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는데..

그날부터 내 뒤에 앉은 애가 좋아졌어요.

그냥 나랑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서요.


아빠

근데 나이가 드니까,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게 섭섭해요. 

내가 아는 쌤은 직장에서 겪은 나쁜 일을 아빠한테 말하면 빠가 쌍쌍바 개나리 욕을 엄청 해주신데요.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워요.


또 차 사고가 크게 났었는데 상대방이 20대 여자라고 함부로 하니까 그 쌤 아빠가 또 쌍쌍바 개나리 욕을 엄청 해주셨데요.

나는 그게 부러웠어요.


나도 아빠가 있었으면 쌍쌍바 개나리 신발끈 다 해주실 건데 우리 아빠도 장난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아빠

나는 우리 남편을 오래 살게 할 작정이에요.

남편이 예뻐서라기 보다 우리 딸들을 생각해서요.

애들은 아빠 있는 집에서 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남편은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라..

쌍쌍바 개나리 신발끈 같은 말은 안 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쓸모가 없진 않아요.

애들하고 잘 놀아주고, 애니메이션도 다운 받아와서 금요일 저녁에 같이 보고, 퇴근할 때 맛있는 것도 많이 사와요.

그래서 애들한테 나보다 인기가 많아요. 


지금 아빠가 엄마하고 같이 있는지

아니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한테는 제가 늦게 갈 거라고 말했거든요.

아빠도 그런 줄 알고 계세요.


애들 다 키우고 우리 딸이 아기 낳으면 그 애도 내가 봐주고 직장에서 괴롭힘 당하면 내가 쌍쌍바 개나리 신발끈 욕도  다해주고 래오래 살다 갈 거예요.

래야 애들이 덜 힘들잖아요.

지들 인생.. 지들이 사는 게 맞지만, 무거운 짐은 내가 조금 나눠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에요.


엄마하고 혹시 떨어져 계시면 빨리 엄마한테 가세요.

엄마가 아빠 돌아가신 후로 많이 힘들었어요.

미안하다고 말하고 같이 계세요. 그래야 저희도 아빠 보러 가죠 ^^

잘 지내고 다음에 만나요.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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