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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Jan 20. 2021

서른 살 제자에게 고백을 받았다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님이야 ㅎ

옛날 옛적에, 김하늘과 김재원이 나오는 '로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여 생님과 남 제자의 러브스토리인데 낭만적이고 로맨틱해 난리가 났었다. 드라마의 명대사는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였는데... 내가 그 대사를 읊게 되다니... 나도 서른 살 청년(?) 제자에게 수줍은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님이야^^


때는 바야흐로 2014년. 임용시험 최종에서 똑 떨어지고 방황하던 때. 특수학교 wee클래스에서 시간제 인력을 구한다는 말을 들었다. 통곡의 골짜기에서 매일 허우적거리느니.. 학생들을 보며 활력을 다시 찾기 위해 그곳에 지원했었다.


특수학교에 상담센터인 wee 클래스가 있다고 하면 '그게 가능해?' 하고 갸우뚱할 수 도 있겠지만 학교폭력 예방차원에서 처음으로 운영을 시작 해였다.


나를 만나러 온 친구들은 초, 중, 고, 전공과 중에서 별을 단 학생들이다. TV를 맨주먹으로 깬다거나 유리창을 부쉬는 폭력성이 있는 친구들, 화가 나면 자해행동을 하는 학생들, 타인에게 공격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이 주 1회씩 상담실에 왔었다.


학생들이 상담실에 오면 마음도 진정시킬 겸, 종이 접기나 보드게임 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물론 발화가 안 되는 친구들도 있어 클레이를 가지고 놀기도 하고 날이 좋으면 산책도 했다. 그러다 의리가 충만한 날은  코코아 한잔씩 나눠 마시기도 했다.


그중에 전공과 진혁이도 있었다. (전공과는 특수학교에만 있는 과정인데 고등학교 이후에 있는 정규과정으로 바리스타, 포장, 조립, 제과제빵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며 학생들이 사회 일원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진혁이는 초등학교 입학 시 유예를 최대한으로 해, 나를 만났을 때는 벌써 서른 살이었다. (특수학교에는 진혁이처럼 입학 유예를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진혁이는 다운 증후군으로 평소에는 순둥순둥 살가운 학생인데 화가 나면 돌변한다.

'제8요일'영화 주인공인 다운증후군. 다운증후군은 21번 염색제 이상으로 나타나는 증상인데 특징적인 얼굴 모습이 있어 '몽골리안 신드롬'이라고도 불린다. (출처: 제8요일 포스터)


"진혁이 안녕? 만나서 반가워요"

"......"

"이제부터 상담실에 오면 보드게임도 하고 종이접기도 하면서 재밌는 시간 보낼 거예요. 선생님하고 잘 지내봐요~"

"......"


처음에는 한마디도 안 해서 살짝 무서웠다. 유리창을 깨고 상담시간을 부여받은 진혁이라서, 상담실에서 갑자기 폭발하면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되기도 했다.


혁이는 상담실에 오면 눈을 내리깔고 책상만 볼 때가 많았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 하고 게임을 할 때도 입꼬리만 실룩거리지 활짝 웃지 않았다. 시간이 다 돼서 교실로 돌아갈 때도 인사하는 둥 마는 둥.. 쓱하고 가버려 서운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혁이가 담임선생님과 함께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진혁아~ 선생님 찾아온 거야?"

"이거.. "


진혁이 손에는 귀걸이가 들려있었다. 수업시간에 귀걸이 만들기를 했는데 상담 선생님을 주고 싶다고 했다고.. 상담 선생님을 '좋아한다''고백'하고 싶다고 말했단다.^^ 그때 나는 서른다섯에 다섯 살짜리 딸이 있는 애엄마였는데;; 말이다.


진혁이한테 살짝 미안하기도 하고.. 진혁이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그동안 눈치채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다.

오래되서 녹슬었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는 진혁이의 귀걸이.. 이사로 한짝은 잃어버렸다 ㅜ

"진혁이. 그럼 그동안 부끄러워서 선생님한테 인사도 안 하고 눈도 안 마주친 거예요? 귀걸이 너무 예쁘다! 고마워! 우리 이따 상담시간에 코코아 같이 먹어요~ 이따 봐요~"


다음 상담시간에 진혁이는 또 책상만 보고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지만, 진혁이 마음이 너무 예쁘고 고마웠다. 이렇게 순수할 수가..  리 아이들은 모두가 꽃이다.  


https://youtu.be/P9u5wxrHUvk(출처)

대문사진: 드라마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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