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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Jul 12. 2020

워킹맘이지만, 새엄마는 아닙니다.  

"너희 엄마는 선생이라면서 숙제도 안 챙겨주던? 새엄마니?"


딸의 말이 사실이라면... 첫째가 초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툭 머리를 건드리며 에게  말이다. 그 선생님은 2학기에 교감으로 승진해서 타학교로 발령이 났다. 만약 우리 딸이 1년 내내 그 선생님께 배웠다면 내가 못 참고 딸을 전학시켰을지도 모르겠다.




4월쯤, 학부모 상담을 갔다. 나도 담임을 맡아서 우리 반 학생들이 모두 하교하는 3시에 서둘러 조퇴를 했다. 50분을 운전해 겨우겨우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상담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교실까지 뛰어갔다. 상담을 하러 가는 학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아이 1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이 한마디 하려고 가는 것이다.


워킹맘이라서.. 시어머니 친정엄마 모두 안계시기에 생후 3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 퇴사 후에도 수능 본다, 편입한다, 임용고시 준비한다고 서툰 엄마로 살았다. 초등학교 입학식과 운동회도 못 갔다. 같은 날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입학식을 하고 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미안함을 한 스푼의 반의ㅜ반이라도 덜어보려고 부리나케 뛰어가는 것이다.


가뿐 숨을 내쉬며 교실을 찾다. 꽤 나이가 있어 보이셨고 양손에 아주 예쁘게 네일을 받은 분이었다. 좋아 보였다. 따뜻하고 온화함 보다는 당당함이 느껴졌고 오랜 교직 생활에 부심이 있는 듯 보다. 그분은 자신을 영재학교에서 오래 근무한 교사라고 소개했고, 왜 자신의 딸 근황을 알려주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딸은 현재 미국 유학 중이라고 했다. 영재를 만들고 싶다면 자기에게 물어보면 된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딸 이름이 써진 클리어 파일을 들고 오셨다.


"가족을 그리라고 했더니 엄마 아빠 동생은 같이 있고, 자기는 혼자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그렸네요. 혼자 따로 그린 것도 그렇고... 이런 그림을 그리는 아이라면 상담 필요할 것 같네요."

"..... 심리 상담이요?.... 애가 책 읽는 걸 좋아해요. 6살이나 차이 나는 동생이 있어서.. 엄마 아빠가 동생한테 많이 매달려 있어서 그렇게 그렸을 수 도 있고요"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보통 때는 전화나 문자는 삼가 주시고 급한 일이 있으면 알림장에 써주세요. 제가 영재교육원에 오래 있어서 저랑 공부하면 아주 똑똑해질 겁니다."

"......."


할 말이 없었다. 준비한 한마디 '잘 부탁드려요' 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나왔다. 나는 공교육을 꽤 신뢰하는 사람이고 학교는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이 많은 딸은, 알림장에 엄마 사인을 안 받아가 몇 번 혼이 났고 숙제한 공책을 빠뜨리고 가 혼이 나기도 했으며 또 선생님께 혼날까 봐 초초해했다. 어느 날은 진지한 얼굴로 선생님이 공부 잘한 친구를 예뻐한다고 서울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사람이 가는 대학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서울대는 어떻게 가냐고 물어본다. '버스 타고 가지'라며 시시한 농을 던지 흐지부지했지만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2가 서울대는 어떻게 알았을까.


딸은 그 후로 자면서 악몽을 꾸기 시작하더니, 자다 일어나 울기도 하고, 자면서 너무 큰소리로 잠꼬대를 해서 진짜 상담을 받아야 하나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급기야 담임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서 전학 가고 싶다고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정말 전학을 가야 되나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여름 방학이 찾아왔고, 2학기 첫 등교날 담임선생님이 바뀌었음을 알았다. 그때부터 정말 거짓말처럼.. 자다 울고 잠꼬대를 심하게 하던 아이가 잠을 푹 잔다.


나도 안다. 다르면 틀리다 생각하고, 앞다투어 경쟁하고, 살아남는 길은 남을 누르고 오르는 길 밖에 없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내가 자랐다.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 다른 것은 나쁘지도 틀리지도 않은 것이며, 남이 아닌 나를 이겨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너도 나도 잘되야 다 같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림 한 장 다르게 그린 것뿐인데.. 알림장에 엄마 싸인숙제 공책  번 빠뜨린 것뿐인데.. 선생님 눈에는 내가 새엄마로 보였나 보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콩쥐 팥쥐, 연이와 버들 소년에 나오는 새엄마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발의 피도 안 되는 내가 그들 그룹에 끼다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새엄마라면, 어린 딸을 주 2회씩 저녁 9시까지 어린이집 원장님 집에 맡기고 편입대 야간수업을 듣거나... 임용고시 공부를 한다고 토요일마다 남편한테 애를 맡기고 독서실로 향하는.. 그런 발칙한 일을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으로 낳아 따뜻하게 키우는 새엄마가 지천에 깔렸다. 딸 친구의 엄마가 바로 그런 따뜻한 새엄마다. 소풍 도시락을 어찌나 정성스럽게 싸는지 나는 따라가지도 못한다.



To. 이제는 교감선생님이 되신 담임선생님께..

"저는 워킹맘이지 새엄마 아닙니다. 발칙한 어미인 저를 그렇게 따뜻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뵌 후 여러모로 생각이 많은 해를 보냈습니다. 저희 집에 6살 된 둘째가 있어요. 둘째는 학교 입학하기 전에  'B창의적'으로 '우리 가족 그리기'를 연습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둘째 때도 상담은 꼭 가볼 예정입니다. 선생님을 뵌 그 날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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