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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Jul 22. 2020

나는 고슴도치다.

'난 전생에 고슴도치였어요'라고 하면...


제가 귀에 꽃을 꽃아 드릴게요. 어서 흰 한복을 상하로 맞춰 입고 오소서.. 라며 '광녀 인증식'이라도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몇 있을 것이다.


사실 난 전생도 믿지 않는다. 내 글에 수차례 무당. 방울. 작두 같은 무속신앙의 잔재들이 포착되지만 그건 그냥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정도지.. 사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독교 다.


그런데..


고슴도치를 바라보고 있자면. 저 미묘한 동물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90% 정도 담아내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가끔 마트에서 물고기를 지나 햄스터를 건너 고슴도치로 향해 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득해져 '멍~'의 종이 울리고 물아일체를 경험한다. 그러다 우리 딸들이 부르면 다시 현세로 돌아와 발길을 돌린다(그냥 멍하니 쳐다보다 딸들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는 얘기).


고슴도치와 나와의 상관관계를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그리고 블랙홀과 빅뱅에 기반해 우주적으로 증명해 보겠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수Ⅱ근처에 가보지도 않은 순수 문과이므로.. 그냥 내 육감과 속담에 기반해 나열해 보고자 한다.


일단. 난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있다.

고슴도치는 피부의 털이 가시와 같은 형태로 변화하여 포식자로부터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나의 이웃이자 모두의 이웃인 초록창 n*ver에서 검색)

처음엔 피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보드라운 털이였을 것이다. 엄마 배속, 갓난아기였을 땐 부드러웠을 테지만 지금은 가시가 되었다. 평소엔 날이 서지 않지만 포식자를 보거나 비슷한 것만 봐도 온몸에 가시가 돛아 나를 방어한다.


고슴도치. 그래 봤자 몸을 동그랗게 말아 밤송이로 밖에 변신하지 못하지만, 뾰족한 가시라도 내보이지 않으면 포식자한테 영혼까지 먹힐까 두려워 가시를 세우는 것이다.


나의 가시를 돛게 하는 것은 대부분은 사람이었기에 나를 아프게 할 사람은 피하고 싶다. 이제 '불혹'의 나이를 지나니 누구를 알아가는 과정 조차 '혹'하지 않아 람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조차 있다.



 다음으로, 두 딸들을 아낀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속담)   

 외계인과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내 가시를 미처 가시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외계인이 3년간 나를 따라다니더니 '생生-걸음마-초중고대-B정규직 체험-결혼-취업 지옥-시댁 체험-안드로메다-사死'란 인간의 생애주기적 발달단계를 나와 같이 밟고자 했다. 운명인지 팔자인지 지금까지 스텝을 차곡차곡 밟아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속담처럼.. 내 비록 고슴도치이지만 두 딸들을 아주 많이 아낀다. 정글 같이 험하고 약육강식이 판치는 바깥세상에 여린 발을 내딛기 전에 사랑을 많이 주고 싶다. 조건 없이 받은 사랑만이 세상이 주는 상처를 자가 치유할 수 있는 면역력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두 딸의 발에도 나처럼 굳은살이 생기겠지만, 나처럼 맨발로 호되게 세상을 알아가기보다 어려서부터 건강하고 단단한 근육이 생겨 강하게 두발로 디디길 바라는 마음이다.


'딴생각하는 어미로 살기'는 고슴도치 기질을 가진 워킹맘의 이야기, 가족 이야기 그리고 육아 에피소드 정도로 봐주면 좋겠다.


뻐꾸기 어미처럼 남의 둥지에서 아이를 키운 것 같기도 하고, 잠만 재워주는 하숙집 주인 같기도 했으며, 어쩔 땐 따뜻한 새엄마로 오해를 받기도 하면서.. 덤벙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워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식 위해 돈을 번다는 명목으로 딸들과의 시간을 반납하며 일하는 모순덩어리이며, 미안함이 항상 발목 밑에서 찰랑거려 대책 없이 첨벙대는 엄마다.


교사라는 직업에 살포시 기대어 교육적 지식을 알려주거나 미래의 인재상을 제시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엔 내 가방끈은 튼튼하고 길지도 않을뿐더러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만 골라했더니 퀼트처럼 조각조각 기워져 있다. 그렇다고 영재 엄마도 아니라서 똑똑한 아이로 키워내는 쏠쏠한 팁을 줄 수는 더더군다나 없다. 그냥 워킹맘으로 사느라 어설프기가 그지없어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를 해가며 키웠다.


다만, 실수 덩어리 개똥 같은 소신을 가지고 육아를 하지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워킹맘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면 좋겠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지금도 대한민국 어딘가에 외계인 남편과 함께 무지빛 두 딸을 키워내는 덤벙대고 첨벙대는 어미가 있다는 것만 기억하시길.

이렇게 시크한 고슴도치 MOM이고자 한다 from  SING

P.S. 부족한 저의 글을 구독해주시는 300여분의 구독자분들께 심심한 감사드립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입니다. 힘찬 빛줄기가 보통의 일상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가족들에게 오늘 저녁 김치전을 선물하는 건 아닐까요? 오늘 외계인과 와인에 김치전 한 장 붙여먹어야겠어요. 의외로 잘 어울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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