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땐 단어로.. 어쩔땐 문장으로.. 나온다. 후유증은 다양하다. 자꾸자꾸 생각나서, 가끔 ㅁㅊㄴ처럼 혼자 설겆이 하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박장대소를 한다. 어쩔때는 귀신씐 여자처럼 눈이 돌변해 욕을 해대기도 해.. 어쩔땐 내 머리를 벽에 박는 자해를 ㅠ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합병증도 있다. 헛소리를 지껄인 후.. 제정신이 들고.. 아차 싶어지면 어김없이 합병증이 터진다. 증상은..이미 어색해져버린 공기 사이에서 '바보같이 웃기'이다.
가족이나 편한 상대와 있으면 이 병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꼭.. 직장! 어려운 자리! 중요한 자리!에서 실소를 머금게 하는 이 ㅈㄹ같은 병이 나온다.
내 인생은 이 지병과 합병증이 나은 걸작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에피소드 1
학교에 첫 발령났을 때 모든 초등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긴장이 됐다. '잘해야지!!' 하고 시작을 했는데..
"안녕하세요. 액면가는 좀 있지만 신규입니다."
방금 제가 뭐라고했죠? (사진 출처: 한끼줍쇼)
WAHT!! 액면가라니.. 액면가라니!! 난 분명 '나이는 있지만'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내가 좀 개구지게 생겼으면 참 좋았을 것을.. 난 누가봐도 딱 진지하게 생겼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내가 던진 말은 싸늘한 공기에 흩어졌다. 이건 정말 후유증이 오래갔다.
*에피소드 2
올해 3월 새 학교로 발령이 났다. 며칠 전 교감 선생님께 처음으로 대면 결재를 받으러 갔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는 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감님과 마주하는 순간...
'후.. 왜 이렇게 긴장되지.. '
교무실 밖에서 크게 호흡 3번하고 밝은 표정으로 들어갔다.
교감님께 짧게 눈인사를 하고 결재서류를 들이 밀었다. 서류 내용을 설명드렸다. 이제 교감님이 서류에 싸인만 하면 된다. 곧 이 긴장되는 곳에서 탈출이 가능하다. 바로 그때.. 교감님이 어색함을 깨고 싶으셨는지 한마디를 던지셨다.
"우리 학교 오더니 예뻐지신것 같네요. 우리 학교가 좋아서 그러나?"
"네 학교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분명 나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은..
"네 학교 물이 좋네요."
정신은 벌써 안드로메다...여긴 어디? 나는 누구?(사진 : 픽사베이)
WHAT!!! 물이라니.. 물이라니!!! 순식간에 어색해진 공기.. 합병증이 터졌다.. 또 바보같이 웃고 있었다. 교무실을 너무 후다닥 나오느라 교감님이 무표정이였는지 웃고 계셨는지 생각이 안난다. 후유증 2주각..
*에피소드 3
작년에 수업연구대회라는 교사로서는 큰 대회에 나갔다. 어찌어찌해 꽤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그런데.. 좋은 성적을 받은 교사들은 그간 어떻게 연구했는지 PPT를 만들고 발표를 해야 된단다. 70~80명 되는동료교사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된다. 긴장된다 긴장되..
발표날 당일. 나의 긴장한 얼굴을 봤는지 다른 발표자들이 '괜찮다'는 눈빛을 보내주기도 했다. 드디어 내 차례.. 마이크를 잡고 발표를 시작했다. 발표를 시작하고 중반쯤.. 연습을 많이 한 덕분인지.. 내 1년 짜리 프로젝트를 차분히 잘 설명하고 있었는데.. 내가 수업에 사용한 남자 아이 인형에 관한 질문이 들어왔다.
"장애학생은 누구를 가르쳐 본 경험이 많이 없습니다. 배움은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 내재화 되고 정점을 찍잖아요. 그런 경험을 제공해 주기 위해 인형에게 문제풀이 과정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진심으로 딱 거기까지가 좋았다.
그런데 긴장된 나머지 또 헛소리를 지껄였다.
"제가 사용한 남자인형은 성교육용 남자 인형였는데 바지가 너무 쉽게 벗겨져 애를 먹었습니다. 학습자료실에서 가져오실 때 바지가 내려가지 않게 꼭 바느질로 꼬매주세요."(...' 꿰매다'라고 하지 않고 사투리를 쓴 것 같다;;)
WAHT!! 여기 저기서 큭 소리가 났다. 여러 학교 교감님도 앉아 계시고 장학사, 장학관, 연구사님들도 앉아 있는 공식적인 자리였는데.. 마이크에 대고 무엇을 지껄인 것이냐. 나는 또 정신없이 헤헤거렸다.
정말 내 입을 꼬매고 싶다(사진:픽사베이)
그런데 난 이 '헛소리병' 때문에 작은 깨달음 같은 걸 얻었다.
나의 이 ㅈㄹ같은 헛소리병 처럼 ... 타인도.. 자기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툭 튀어나온 말이 있지 않을까?
나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되내이는 후유증에 시달려 너무 괴롭지만.. 자신의 병증과 후유증을 의식하지 못한 축복받은 사람도 있겠지..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니가한나쁜짓이다너에게돌아가길바래" 이 비수를 조금 너그럽게 쓰기로 했다.
나에게 상처 준 그 사람도 실수일 수 있으니.. 또는.. 나처럼 .. 아무말대잔치하는 지병일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