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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한범 Mar 04. 2016

신선생의 쿰부 트레킹16

16. 스물여덟, 히말라야 젊은이의 꿈은!

고도를 천 미터 이상 내렸습니다. 해발 4천 미터 아래로 내려오니 고도에 적응하지 못해 불협화음을 일으켰던 신체 부위가 제 기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콧물은 멈추었고 기침도 잦아들었습니다.     


스물여덟, 롯지 주인의 꿈    


스물여덟 젊은이가 롯지 주인입니다. 순박한 인상의 주인은 동갑내기 아내와 여섯 살, 두 살 된 딸과 아들이 있습니다. 공항이 있는 루클라 인근 마을이 고향이지만  생계를 위해 포르체텡가(3680m)에 정착하였습니다.

    

롯지를 임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월세를 묻자 한참을 머뭇대다 “500$”이라고 대답합니다. “겨울철이라 손님이 없지만 봄, 가을에는 손님이 많아요!”라며 웃습니다. 이 젊은이의 꿈은 “롯지 주인이 되어 자녀들을 카트만두에서 공부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은 산을 떠나 본적이 없지만 자식은 도시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희망하는 그의 마음은 우리나라 부모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투숙객은 우리뿐입니다. 저녁을 먹고 난롯가에서 대화가 이어집니다. 부부는 같은 마을에서 자랐으며 아내는 결혼 전, 카트만두에서 몇 년 직장생활을 하였지만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한 번도 쿰부 히말라야를 떠나지 않았으며 버스도 비행기도 타 보지 못했다며 수줍게 웃습니다.    


“도시에 갈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어요.”    


남편과 아내 모두, “이곳 생활에 만족합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도시에서 살았던 아내도 한 번도 도시에 가보지 못한 남편도 입을 모아. 하늘과 설산만 보이는 이곳에서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까요?    


지인이 스마트폰으로 뮤직비디오를 아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여섯 살 딸이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흥에 겨운 그는 식당을 오가며 춤을 춥니다. 손 사위와 리듬 감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이의 춤을 지켜보는 부모도 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내심 불안한 표정입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을은 포르체(3810M) 마을 아래 계곡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사방이 막혀있고 하늘만 열려 있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지만 하늘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강물 소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처마 밑에 앉아 하늘을 바라봅니다.   

  

세상으로 가는 길    


남체(3440M)로 출발하였습니다. 남체는 쿰부 히말라야의 중심입니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실 수 있으며 제과점에서 갓 구운 따스한 빵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들떠 걸음이 가볍습니다. 이제 이십 여일의 트레킹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오르막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내리막길을 걸었는데 오늘은 오르막부터 시작됩니다. 히말라야는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고개를 들면 몽라(3970m)가 보이지만 거리는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세상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에게 히말라야는 조용히 속삭입니다.     


“히말라야가 아름다운 것은 네가 걸었던 시간들 때문이야. 쉽게 내려가면 쉽게 잊는 법이거든!”    


조급한 제 마음을 히말라야가 눈치를 챘습니다. 입에서 단내가 날 무렵 오색 타르초가 손짓하고 있습니다. 몽라입니다. 고개 아래로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보았던 아름다운 마을 포르체, 쿰부의 백미 아마다블람, 쿰부의 수호신 캉테가까지 마음에 담았던 풍경이 다시 펼쳐집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사나사(3550M)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이주 전, 우측 길을 택해 칼라파타르로 향했습니다. 쿰부 히말라야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이곳에 왔습니다. 인연을 맺은 곳이기 사람도 풍경도 정겹습니다. 트레킹을 시작하는 사람들 모습이 보입니다. ‘기대 반, 불안 반’의 마음으로 걷는 그들에게 미소 띤 얼굴로 “나마스테”라고 인사합니다.     


돌아온 ‘남체’    


남체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을 입구의 마니차를 돌립니다. 히말라야 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올립니다. "무사히 트레킹을 끝낼 수 있어 감사합니다."  히말라야는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산의 허락이 있어야 하기에.

    

이곳을 떠날 때에는 빙판길이었는데. 따스한 봄내음이 마을을 감싸고 있습니다. 골목길은 질척대고 아이들은 맨발로 놀고 있습니다. 지난 번 묵었던 롯지에 도착하니 종업원이 환한 미소로 반겨줍니다. 아직 트레킹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덕담을 나눕니다.  

  

거울을 보았습니다. 거울 속에 낯선 이가 어색하게 웃고 있습니다. 머리는 오랫동안 감지 않아 떡진 머리가 되었으며 얼굴은 강한 자외선으로 곳곳이 벗겨져 있습니다. 코는 헐었고 입술은 터졌으며 턱수염은 멋대로 자랐습니다.     

낯선 이에게 조심스레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히말라야를 걸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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