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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한범 Feb 21. 2016

신선생의 쿰부 트레킹5

5. 히말라야에서 세상과 소통하다.

  한 발 한 발 걷다 보니 어느덧 남체(3440m)에 도착했습니다.  

    

  삼면이 산허리에 둘러싸인 남체는 쿰부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산중 도시인 이곳에는 카페, 약국, 슈퍼, 롯지 등 편의 시설이 갖춰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주말 시장이 열려 티베트와 네팔 각지에서 운송된 물자가 거래됩니다. 트레커와 등반대는 이곳에서 부족한 물자를 보충해 목적지로 떠납니다.   

  

산악인의 동반자 셰르파   

  

  대부분 주민은 셰르파족입니다. 셰르파는 히말라야 산악 가이드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네팔과 티베트의 경계선 부근 고산 지대에 사는 부족 이름입니다. 뛰어난 심폐 기능을 가진 셰르파족은 세계 유명 산악인의 동반자였습니다. 히말라야 고봉 등정은 그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베이스캠프 설치, 물자 수송, 로프 설치뿐 아니라 등반을 안내하고 직접 산에 오릅니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세계 최초로 오른 '텐징 노르가이', 네팔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밍마', 에베레스트를 무려 21번이나 오른 '아파' 그리고 오은선과 함께 히말라야 6개 봉우리를 오른 '다와 옹추'까지. 그들은 모두 셰르파족입니다.   

  

  마을 위쪽에 있는 전망 좋은 숙소에 투숙하였습니다. 창을 통해 콩데(6093m)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침대와 담요는 청결했고 화장실도 실내에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화장실이 실내에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루 자는 비용이 500루피(약 5$)로 다소 비싸지만 호사를 누려봅니다.  더운물 한 양동이를 구입해 샤워하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세상 변화에 발 맞춰 히말라야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인터넷입니다. 대부분 숙소에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더딘 속도 때문에 세상과의 접촉은 히말라야를 걷는 것만큼 어렵지만 인내를 가지고 세상의 문을 두드려봅니다. 세상에서는 히말라야가, 히말라야에서는 저잣거리가 그립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트레킹 기간이 15일 이상 남았습니다. 건강하게 돌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빠른 소식 감사합니다.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하고 오세요. 혼자라 심심하지만 오랜만에 혼자만의 유익한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만 못하네요."라는 답변이 실시간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잠시 후 유럽에 있는 딸이 한 마디 남겼습니다.    


  "엄마, 아빠 말투가 왜 이래요!"    


  제가 생각해도 멋없는 부부입니다. 집을 떠난 후 10여 일 만에 처음 전하는 소식인데 무덤덤한 대화가 전부입니다. 결혼 기간과 반비례하여 말이 줄어듭니다. ‘사랑’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뜨거운 물을 수통에 채워 침낭 속에 넣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체온과 뜨거운 물이 상승 작용을 해 안락한 잠자리가 되었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 커튼을 열었습니다. 하얀 콩데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봉우리 위에는 바닷가 모래알보다 많은 별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창문을 여니 별빛이 창문을 넘어 제 마음에 쏟아져 들어옵니다.

 

  

남체 사이드 트레킹   

  

  고소 적응을 위해 남체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습니다. 해발 3000미터에서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몸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겠지요. 앞만 보고 달려가던 어느 날 " 어! 이게 아닌데"라는 신호가 오면 멈출 때가 된 것입니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더 큰 대가를 지불할 수 있기에 휴식을 통해  과부하된 삶에 냉각수를 보충해야 합니다.  

  

  샹보체(3720m)와 쿰중(3790m) 마을로 사이드 트레킹을 하기로 했습니다. 잠자리 고도보다 높은 곳을 다녀오면 고소 적응에 도움이 됩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기에 자기 페이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나는 남보다 며칠 단축하여 트레킹을 끝냈다"는 자랑처럼 어리석은 말은 없습니다. 히말라야는 속도전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곳입니다.  

   

샹보체 가는 길은 장난이 아닙니다. 남체보다 300미터 높은 곳이지만 깎아지른 오르막은 마치 수직 벽을 오르는 느낌입니다. 한 발 내딛기도 힘든 오르막을 자루를 둘러멘 네팔 젊은이가 콧노래를 흥얼대며 지나갑니다. 더구나 그는 슬리퍼를 신고 있습니다.

    

  산을 오를수록 시야가 트이면서 시야가 점점 시원해집니다. 말발굽 모양의 남체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획적인 마을이 아님에도 한 틈의 오차 없이 레고를 맞추어 놓은 것처럼 짜임새 있습니다. 마을 앞에는 콩데가 늠름한 모습으로 마을을 지켜보고 있고 아래쪽 계곡에는 두드코시강이 흐릅니다.

    

  샹보체(3720m)는 마을이 아니라 개활지입니다. 넓은 공터는 과거 비행장이었습니다. 지금은 루클라로 옮겨가 화물을 운송하는 헬리콥터만 오가고 있습니다. 샹보체의 뷰 포인트는 에베레스트 뷰  호텔(3859m)입니다. 이곳에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로체(8516m), 아마다블람(6856m), 탐세르쿠(6608m), 캉데가(6685m), 콩데(6093m) 등 쿰부 지역의 주요 설산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습니다.

    

  감탄사가 반복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스펙터클한 모습은 짧은 어휘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순간 모든 것을 잊고 그저 멍하니 바라봅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 자연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에드먼드 힐러리의 꿈이 담긴 '쿰중' 마을     


  쿰중(3780m) 마을로 방향을 잡습니다. 상업 지역인 남체와 달리 고즈넉한 산중 마을입니다. 지역 주민이 신성시하는 쿰비율라(5761m)와 샹보체 사이 분지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활기찬 쿰부와 달리 정적이 감돕니다. 아이들이 썰매를 타며 떠드는 소리만이 썰렁한 골목을 오가고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힐러리 스쿨'이 있습니다.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힐러리 경이 만든 학교입니다. 그는 에베레스트 등정 후 히말라야 각 지역에 3개의 병원, 13개의 진료소, 30여 개의 학교 그리고 12개의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네팔 셰르파들은 그를 '두 번째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힐러리 스쿨'은 그가 1961년에 만들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힐러리 스쿨'은 영원히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입니다.   

   

  내일은 탱보체(3867m)로 떠납니다. 쿰부 히말라야 속살에 한 발 다가가는 것이지요. 이번 트레킹은 해발 4000~5000미터 고지에서 일주일 이상 있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면 트레킹은 실패합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트레킹은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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