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세계 3대 미봉(美峰) 중 하나인 '아마다블람'을 만나다.
어젯밤 집사람과 문자를 주고받은 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매년 겨울이면 집을 떠나는데도 기꺼이 승복하는 집사람의 마음을 히말라야에서 헤아려봅니다. 가슴속 이야기를 전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애틋합니다.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집사람의 반대가 있었다면 히말라야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지 못했겠지요.
남체(3440m)의 아침은 아름답습니다. 여명이 터 오기 시작하면 콩데(6186m) 윗부분부터 햇빛을 받아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빛이 산허리를 타고 내려오면 남체의 아침이 밝아옵니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아침 모습은 한 편의 아름다운 다큐입니다. 히말라야의 일출과 일몰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영원히 '히말라야 폐인'이 될 것입니다.
세계 3대 미봉 '아름다블람'
어제까지가 워밍업이었다면 오늘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십여 일 동안 4, 5천 미터 고지를 오르내려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정이기에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만약을 대비하여 어젯밤부터 고소 예방약을 복용하였습니다. 고산 지대에서 가장 큰 위험은 고소입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조심하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샹보체 팔부능선을 따라 걷습니다. 산은 깊어지지만 길은 평탄합니다. 아마다블람(6812m)이 친근한 모습으로 인사를 합니다. 세계 3대 미봉(美峰) 중 하나인 아마다블람은 쿰부 트레킹의 랜드마크입니다. 7, 8천 미터가 즐비한 쿰부 히말라야에서 높이로 남을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단아하고 부드러운 산세로 산악인의 사랑을 받습니다. 에베레스트를 중심으로 한 산맥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벗어나 있어 다소 외로워 보이지만 자신만의 아름다움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텐징 노르가이를 추모하는 초르텐(기념탑)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에 만든 기념탑입니다. 셰르파족인 그는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8848미터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초등하였습니다. 등반대의 포터(셰르파)였지만 힐러리는 "진정한 영웅은 내가 아니라 텐징'이라며 영예를 텐징에게 양보하였습니다. 그들은 등정 이후 히말라야에 학교, 병원 등을 설립하며 자신들이 얻은 영예를 히말라야에 갚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캉주마(3550m)를 지나면서 내리막이 시작되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내리막은 오르막은 다르지 않습니다. 내려간다는 것은 올라야 할 능선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직 다음 발자국만 생각하며 걷습니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트레커의 숨소리가 거칩니다. 이미 칼라파타르 등정을 끝내고 하산하는 발걸음인데도 조심스러운 모습입니다. 히말라야를 내려가기 전 까지는 겸손한 마음으로 걸을 뿐입니다.
사나사(3600m) 마을 어귀에는 칼라파타르(5550m)와 고쿄리(5360m)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두 코스 모두 5천 미터 이상의 높은 봉우리(峰)로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듯 서로 다른 두 봉우리의 등정을 위해 수많은 트레커들이 쿰부 지역을 찾습니다. 저는 칼라파타르로 향합니다.
우유 빛, '두드코시 강'
내리막은 두드코시강이 흐르는 푼키텐가(3250m)에서 끝났습니다. 두드코시는 우유를 뜻하는 '두드'와 강이라는 뜻의 '코시'의 합성어입니다. 이 강물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와 여섯 번째 봉우리 초오유(8201m)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합류하여 하나가 되어 흐릅니다. 언뜻 보기에는 작고 초라한 계곡물이지만 갠지스 강을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대장정의 장대한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볕 좋은 양지에 자리 잡은 롯지에서 점심을 주문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햇살은 따스하고 몸은 나른합니다. 등산화를 벗고 편안한 마음으로 의자에 누워 휴식을 취합니다. 한참을 자다 깨어나니 귓바퀴가 간지럽습니다. 손으로 만져보니 오돌토돌한 것들이 잡힙니다. 화상 같습니다. 볕이 좋아 모자를 벗고 잠깐 잠들었는데. 매사에 조심하라는 히말라야의 교훈입니다.
텡보체(3867m)까지는 해발 600미터를 높여야합니다. 쿰부 히말라야 두 번째 깔딱 고개입니다. 산 능선 위에 있는 텡보체는 인간의 인내력을 시험합니다.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지만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쁜 호흡을 고르며 열심히 걷지만 걸음은 제 자리를 맴돌 뿐입니다. 고산에 이골이 난 셰르파족 포터나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이곳을 오가고 있는 야크도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합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합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걸음을 멈추었을 때, 앞만 보고 걸을 때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경주마처럼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쿰부 불교의 중심 '텡보체'
인내가 한계에 도달할 무렵 작고 소박한 건물이 보입니다. 카니 게이트(Kani Gate)입니다. 텡보체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문에는 탱화가 있습니다. 마을은 에베레스트, 눕체, 로체, 아마다블람, 탐세르크 등 칠, 팔천 미터 고봉들이 앞뒤로 도열하여 있습니다.
마을에는 쿰부 지역 불교의 중심이며 가장 규모가 큰 곰파(사원)가 있습니다. 곰파는 지진과 화마로 몇 번 소실되었지만 국제사회의 도움과 셰르파족의 후원으로 1993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재건되었습니다. 곰파를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는 초르텐(불탑)이 우뚝하며 타르초(경전을 적은 깃발)와 룽다(경전을 적은 천 다발을 묶어 놓은 끈)가 물결치고 있습니다.
종교와 삶이 하나인 지역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신심 깊은 가이드는 사원 앞 마니차(경전을 새긴 원통형 바퀴)를 열심히 돌리고 있습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불교 경전을 한 번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이십 대 초반인 그가 무엇을 기원하는지 알 수 없지만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가이드가 일정을 변경하여 디보체(3820m)까지 이동을 제안합니다. 해발을 내리기에 고소 적응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내일 일정을 단축할 수 있기에 기꺼이 동의하였습니다. 디보체 가는 길은 눈이 쌓여 있어 쉽지 않았지만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봅니다.
남체에서 출발하여 여덟 시간이 지나서야 디보체에 도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