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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영 Dec 08. 2019

 달 항아리 이야기

'쉼'

12월은 생각을 머물게 하는 달이다.

내면의 자아와 대면하면서 숙고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계획하는 주말을 보내고 있다.

2019년 5월 언저리 어디쯤으로 기억된다.

예전에 썼던 글이 마음에 들어 다시 정리해서 올려 본다.

‘쉼’이란 열심히 무언가에 몰입하고 찾아온 후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조선시대의 도자기와 한국미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다.

    

<백자 달 항아리, 조선 18세기 전반>

<높이 41cm 입지름 20.0cm 밑지름 16cm 접수 702, 보물 1437호,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근간으로 왕실의 품위와 선비의 격조가 미술품에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문기(文氣)가 흐르는 품위와 격조는 조선 백자의 미적 특성이기도 하다. 17~18세기 영·정조 연간에 제작된 조선 백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기에 조선은 왜란(1592~1598)과 호란(1636~1637)의 피해를 극복하여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안정과 번영을 회복하였으며, 문화적으로는 조선의 제2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조선의 관요에서는 순백자, 청화백자, 철화백자, 동화 백자 등 다양한 종류의 백자가 제작되었다. 이 가운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백자 큰 항아리[백자대호(白磁大壺)]가 바로 ‘백자 달 항아리’이다. 17세기 후반에 나타나 18세기 중엽까지 유행한 백자는 보름달처럼 크고 둥글게 생겼다 해서, 1950년대에 백자 달 항아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려청자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으나 조선의 백자 달 항아리에 대해서는 생소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 소개를 해본다. 크기가 커서 한 번에 성형이 되지 않아 아랫부분과 윗부분을 따로 성형해서 붙인다. 그로 인해 완벽하게 둥근달 항아리를 찾기 어렵지만 둥그스름하고 넉넉한 모습이 자연의 꾸밈없는 모습과 닮아 있어  조선을 대표한다. 달항아리는 만인을 비춘다. 같은 달이지만,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달을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신비로운 달항아리를 보면서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절제와 담백함으로 빚어낸 오묘한 순백의 세계가 담긴 달항아리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조선미의 정수이다. 또한 달항아리는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새로운 영감과 창조의 세계로 이끄는 또 다른 門이다.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에서 더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 조선 백자 달 항아리는 백의민족의 특징처럼 소박하지만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선비정신을 담은 듯하다.

오늘은 조선 백자의 백미(白眉)인 달 항아리를 보면서 우리 선조들의 넓고 깊은 마음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참고문헌>

1.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글

2. 청소년을 위한 한국미술사, 박차지현, 두리미디어,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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