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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영 Sep 27. 2019

[DOING GOOD BETTER]
냉정한 이타주의자

(feat: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는 꼭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구글이미지 참조


1.들어가며

2018년 약 9개월 동안 철학박사님의 서양철학사 강의를 들었다. 3번의 계절이 바뀔 때까지  철학이란 학문을 경험해 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책을 보면 분명 우리나라 글인데 영어보다 더 독해가 안 되는... 한 줄 읽으면 두줄이 휘발되어 기억에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그렇지만  왜? 나는 그 시간을 투자하면서 까지 힘들게 철학에 매달렸을까?

 첫 번째 이유는 논리적인 사고를 갖고 싶었고 두 번째는 지적 유희 인듯했다.

하지만 종강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살아가면서 철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늘 질문을 던지면서 인생을 마주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효율적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2. 본론으로 말하기

도덕적 행위는 의무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이며, 의무는 도덕 법칙에 대한 경외심에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라 칸트는 주장했다. 그 자체가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은 오직 선의지 (善意志:a good will) 말고는 없다.

사람들이 보통 선하다(좋다)고 칭찬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이 아니다. 지능도 선하며(좋으며), 용기와 같은 여러 개인적 성품도 선하고(좋다), 부(富)와 건강도 선한 것(좋은)것이다. 그러나 이 여러 성질은  오직 이들을 다루는 데 있어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의지가 선 할 때만 도덕적으로 선하다. 의지가 선하지 않으면  이 여러 성질은 해로움을 끼칠 뿐이다. 선의지  모든 도덕적 가치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전제 조건이 된다. 1) p 493

칸트의 정언명법(定言命法: the categorical imperative)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도덕적 선(善)을 행하는 행위에 있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5가지 정도의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1.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2.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3. 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4.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5.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어느 정도 인가? 2) 본문 p28

위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1. 공리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서 QALY(질 보정 수명) 지표를 바탕으로 추론하기

2. 맥락적인 방법으로 사고하여 다양한 방법을 접근

3. 균형적인 분배를 고려하기

4. 최악의 상항에 대비하기

5. 성공의 크기와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하기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답이니 독자분들도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해보길 바란다.


저자는 기부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대신 사주는 일이다. 3) 본문 P54

국어사전에는 기부란?'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음'이다.

각각이 가지는 기부의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나의 기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 사진은 2018년 5월 초등학교에 페이스페인팅으로 재능 기부를 

하러 학교를 방문했다.  초등학교 교사 친구의 소개로  2년 전에 잠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한 초등학교였다. 오랜만에 가니 예전 그대로 모습이고 아이들은 그저 해맑고 순수하다. 이 친구들에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달란트이지만 나누어 주고 싶었다. 피부에 물감과 붓이 닿는 느낌이 새로운 아이들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한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면서 쳐다보았다. 나는 아이들이 나로 인해서 잠시라도 색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행복해지길 바랬다. 다른 것은 것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의 기부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유명 연예인도 아니고 그림으로죽어가는 목숨을 살리지는 못했다.  이 책에 나오는 의사 그레그 루이스(Greg Lewis)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하였다. 본인이 가난한 나라에 가서 의사로 일하면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사람 수와 돈을 기부해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생각하고는 돈벌이가 되는 종양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한 그레그 루이스의 이야기에서 깊은 통찰을 느꼈다.  나는 재능기부는 무조건 그 현장에서의 나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통념적인 사고를 하였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재능 기부가 가능하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재능기부를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

피카소의 <게르니카>- 구글 이미지 참조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 작품.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작품의 주제로 다루고 있다. 초현실주의와 후기 입체주의가 혼합된 특별한 모더니즘 양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1937년 5월 10일부터 6월 15일까지 제작되었다. 1937년 1월 스페인 내전 진행 중이던 시기에 스페인 공화정부 사절단이 피카소를 직접 방문하여 그 해 열릴 파리 국제박람회 스페인관의 벽화 제작을 의뢰했고, 당시 공화당 지지자였던 피카소의 승낙으로 게르니카가 제작되었다.

사진만으로는 느끼기 어렵지만 가로 7m, 세로 3m가 넘는 상당한 대작이다. 
피카소가 이 그림을 전시했을 때 한 독일군 장교가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당신이오?"라고 질문하자 피카소가 "아니오. 당신들이 그린 그림이지."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매우 유명하다. 한편 이 그림에 대해 평론가들이 '황소는 전체주의, 말은 핍박받는 스페인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내놓자 피카소가 "소는 소고 말은 말이다."라고 대답한 일화가 있다. 이 뒤에 이어진 말이 더 있으나 어떤 말을 했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고, "이들은 학살을 당한 짐승 들일뿐이다. 나에게는 그게 전부다."라고도 알려져 있다.
첫 공개 후 작품은 프랑코 독재 정권 하의 스페인에서 전시할 수 없다며 피카소가 반대해서 뉴욕 현대 미술관에 대여 형태로 전시했다. 피카소는 92세까지 장수했지만 프랑코도 천수를 누리는 바람에 피카소 생전에 이 그림이 스페인으로 되돌아오지는 못했고, 스페인이 민주화된 후 피카소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으로 돌아왔다. 이후 보존 문제로 1992년부터 마드리드 소피아 왕비 미술관(Museo de Reina Sofia)에 소장·전시 중이다. 4) 나무 위키 사전 참고


3. 글을 마무리하자면

이 한 점의 그림이  폭력 없이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앞장을 섰다. 나도  예술가로서 나의 재능이 이렇게  발현될 수 있도록 고민해 보았다.  지금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꾸준한 창작활동과  공부를 통해 나의  영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물론 피카소의 게르니카처럼 시대에 남을 위대한 작품이 아니라도 좌절하지 말고 의식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냉정하게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꾸준히 글과 그림으로 남겨서 누군가에게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읽고 쓰고 그려본다.


 <참고문헌>

1.<즐거운 서양철학사>,S.P.렘브레히트,동서문화사,2017

2.<냉정한 이타주의자>, 윌리엄 맥어스킬,부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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