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8씀
「마구」
고교야구 배터리를 노린 연속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담고 있는 추리소설이다.
이 작품은 내 취향이 꽤나 많이 응집되어있다.
고교야구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야빠의 구미를 당겼고,
그 중에서도 에이스 투수가 등장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이 무대를 바탕으로 미스터리가 진행된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고,
결국은 형사가 범인을 잡아내는 추리물의 형태가 마음에 들었다.
그 모든 취향의 응집보다도 나를 매료시켰던 건,
한 인물이다.
스다 다케시,
그는 가이오 고교 에이스로서 초고교급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최고 유망주로서 앞길이 창창했다.
자신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언제나 최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눈앞의 목표만을 바라봤기 때문에 야구와 가족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야빠는 야구에 미쳐있는 선수를 가장 사랑한다.
내 팀을 가장 사랑하고, 내 팀의 승리를 위해서만 앞으로 나아가는 욕심 많은 선수를 사랑한다.
그런 선수가 결국은 승리를 쟁취하기 때문이다.
내 팀의 승리를 안겨주는 선수를 안 좋아할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무한한 사랑을 줄 수밖에.
또한 야빠는 스토리가 있는 스타의 탄생에 환장한다.
만약,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야구에만 매진하는 선수가,
무럭무럭 성장해서 지방 어느 야구부의 에이스가 되어 전국대회 진출을 이끌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계약을 목전에 두었다면,
프로가 되어서도 그 능력을 발해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면,
야빠들은 팀을 막론하고 이 선수를 응원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언제나 흥분에 찬 야빠들은 이런 스토리에 쉽게 감명 받기 때문이다.
스다 다케시는 야빠가 사랑해 마지않는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다.
그래서 야빠인 나는 당연히 다케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야빠의 시선으로 야구선수 다케시의 모습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려서 방법을 몰랐던, 한 인간으로서의 다케시.
나는 그 모습 역시 사랑한다.
다케시는 신뢰를 목숨처럼 여기는 강직하고 단단한 사람이다.
이미 버려진 신뢰에서 비롯된 상처의 경험 때문인지, 신뢰를 잃는 것은 결국 목숨을 잃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다케시는 자기와의 약속도 지켜내려 애를 쓴다.
다케시에게는 그 약속이 바로 가족을 지켜내는 것이다.
세상이라는 것은 바람이 불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는 누구나 흔들리고 휘어진다.
그것이 생존의 법칙이고, 삶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제 심지를 굽히지 않고 버텨내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그를 보고 멍청하게 힘을 뺀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바람에 몸을 맡겨 모두가 휘어져있을 때에도,
제 혼자 곧게 몸을 세우는 광경만큼 멋진 것은 없다.
그렇게 멋진 사람도 살다보면 몸을 굽혀야만 하는 날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그는 절대 굽히지 않는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는 않는다.
부러질 때의 고통이 너무나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부러지기를 택한다.
언제나 휘어지기만 했던 사람들은 절대 부러지지 못한다.
휘어지는 것으로도 충분히 고비를 넘길 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부러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부러져야만이, 끝을 봐야만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이를 잘 모른다.
그래서 부러지지 못한 채, 한없이 낮아지기만 할 뿐이다.
휘어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세상에서 다케시는 부러질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고작 10대 후반의 나이에 부러져야할 필요를 느껴야만 했다.
제가 부러져야만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제 가족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휘어지는 세상에서 다케시는 끝끝내 휘어지지 않았고,
결국은 부러졌다.
보통의 세계에서 부러짐은 곧, 실패를 의미한다.
하지만 적어도 「마구」의 세계에서 부러짐은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부러진 다케시가 결국 제 유일한 약속인 가족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보였던 다케시의 원초적 절실함에 누군가는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무엇이 다케시를 원초적 절실함에 파묻히게 만들었는지,
그 원초적 절실함으로 다케시가 지켜낸 것이 무엇인지,
그 하나를 지키기 위해 다케시가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를 목도한 나는,
절대 그러지 못한다.
그 하나의 약속을 위해 기꺼이 제 청춘을 부러트린 다케시.
나는 그를 절대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사랑을 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