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8씀
백가희, 「이토록 사랑스러운 삶과 연애하기」
작가 백가희는 사랑주의자다. 본인 스스로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지구 밖에서 봐도 그는 사랑으로 가득 찬 인간이다. 그는 넘치는 사랑을 넓고 깊게 그리고 최대한 많은 존재들에게 흩뿌린다. 증거는 그의 인스타그램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3000개가 넘어가는 게시물은 온통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존재들과 함께인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사랑하는 고양이들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사랑하는 식물들과 함께, 사랑(?)하는 야구와 함께.
흘러넘치는 작가의 사랑을 보며 나도, 다른 이들도 모두 마음 한 구석에 온기를 느낀다. 뜨겁진 않아도 오래토록 식지 않는 지속적인 사랑에, 파도에 등 떠밀려 갈라지는 땅의 끝자락에 서버린 이들은 잠시나마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고른다.
넘치는 사랑을 흘려보낼 곳이 부족했던 걸까. 어느 날 갑자기 작가는 다른 이들의 인스타 탐방을 시작했다. 일일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며 그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쏘아 보냈다. 나의 피드에도 다녀와서 졸업을 축하한다는 댓글을 남겼는데 처음엔 잘못 본 줄 알고 정말 눈을 비볐고, 실제인 걸 알아채고는 정말 핸드폰을 던졌다. 그 다음엔 혹시나 해킹일까 이 놈의 해커들이 과몰입 인간을 놀려먹으려고 작당을 하는 걸까 전전긍긍하며 잠에 들었다가 일어나자마자 해킹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스토리에 박제했다.
의미부여에 중독된 나로서는 바로 작가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라는 하늘의 계시려니 생각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운명이려니 생각했다. 어차피 책은 사려고 했다. 자잘한 덕후의 심정으로, 순전히 굿즈를 모은다는 마음이었다. 읽을 생각은 없었다. 책을 읽는 취미가 있어야 말이지. 그냥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를 어쩌겠나. 그가 나에게 사랑을 쏘아 보냈고, 그것을 받았으니 그만큼 다시 쏘아 드려야지.
작가의 「이토록 사랑스러운 삶과 연애하기」는 지난 2020년에 5개월 간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 <일간 백문백답>을 추려서 엮은 글이다. 즉 책 한권으로 그가 뿜어낸 5개월간의 사랑을 응집하여 손에 쥐어볼 수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마음속의 온기가 날아가지 않고 포근히 심장을 감싼다. 마치 보드라운 고양이가 품 안 가득 안긴 듯, 고양이털에 덮여 따뜻하다가도 간질거리는 털끝에 미소가 지어지다가도 알러지가 올라오는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작가는 특별나게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는 글을 쓴다. 마치 일기를 쓰듯 편안하게 단어를 잇고 문장을 풀어낸다. 다양한 글의 소재 역시 우리네 일상에서 접할 수 있을 법한 존재들이다. 평범한 존재들로 사랑을 노래하고 그려낸다. 평범에 녹아든 그의 사랑은 읽는 이들이 평범속에서도 사랑을 찾을 수 있게 한다. 평범속에서 발견한 사랑은 인간을 말랑하게 만들면서도 단단하게 만든다. 온 세상에 널리 묻어있는 평범한 사랑에 인간은 굳이 모날 필요가 없어지고, 모나지 않은 만큼 세상과 부딪칠 일이 없어진 인간은 더욱 내구성을 키울 수 있다. 그렇게 견디고 버티다보면 살아가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견디고 버텨서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한 작가는 제 마음껏 사랑을 뻗어내면서 사랑하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지를 말한다. 삶은 꽤 사랑할 만하고 그 사랑이 결국은 제 삶을 이끌 것이라 말한다. 혹시나 인간들이 방법을 모를까봐, 그는 삶과 행복하게 연애하고 있는 지금의 제 모습을 다정히 풀어낸다. 용기와 사랑과 다정을 듬뿍 눌러 담아 사랑이 가진 강인한 힘을 인간들이 몸소 느껴보도록 말이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그 경험의 후회 때문인지 고양이와 함께하는 그가 부러웠다. 강아지를 사랑했던 시절을 추억하고, 강아지와 함께했던 시간을 되짚어보고, 강아지의 얼굴을 다시 그리고, 강아지의 냄새를 다시 떠올리고. 나는 과거이지만 그는 현재라는 것이 정말 부러웠다. 맘껏 사랑해주는 삶, 그걸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나보다 더 큰 사랑을 주던 존재, 그 커다란 사랑이 빠져나간 가슴은 꽤나 오래 허전했고 아직도 온전히 메워지지 않았다. 시간의 틈으로 빠져나간 아이들이 더 자유로워졌을 거라 말하는 그의 말에 행복해 할 강아지를 떠올리며 다시금 감정을 갈무리해보지만 그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랑에서 비롯된 그리움이지만, 근본적으로 사랑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사랑의 첫 번째 재료가 기억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강아지에 대한 나의 그리움도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존재를 기억하고, 함께 공유한 일상을 기억하고, 그로 비롯된 감정을 기억하고. 난 아직 강아지를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난 아직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평생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일상을 사랑하는 작가를 보며 나 역시 쉽고 너르게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맞는 봄바람,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걸어가는 길, 귀가 터질 듯이 울려 퍼지는 밴드의 음악, 매일 욕하면서 보는 주제에 끊지는 못하는 야구, 가끔 들여다보는 강아지 사진. 생각보다 많은 존재에 사랑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나의 사랑이 퍼져 있었다. 그 존재로 하여금 내가 웃었고 단단해졌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랑을 뻗어보려 한다. 더 많은 사랑을 하면 더 많이 웃고 단단해질 거라 생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