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0씀
니시카와 미와, 「야구에도 3번의 기회가 있다는데」
덕심전심: 덕후의 마음은 서로 통한다.
희로애락을 모조리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는 종종 인생과 비교되곤 한다. 이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09시즌 기아타이거즈와 sk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7차전을 떠올린다. 6회까지 sk는 차곡차곡 득점을 올리며 5-1의 스코어로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sk의 철벽 불펜을 생각해 본다면,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경기를 뛰고 있는 기아까지도 sk의 우승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6회 말 터진 나지완의 투런 홈런과 7회 말 루키 안치홍의 솔로 홈런에 이어 김원섭의 1타점 2루타로 경기는 다시 원점이 되었다.(아, 안치홍 보고 싶네. 안치홍 어디 갔냐...) 9회까지 5-5로 끌고 가던 게임에서 끝내 환희를 부르짖은 건 기아 타이거즈였다. 9회 말 1사, 지칠 대로 지쳐버린 채병용의 몸 쪽 실투를 나지완은 그대로 받아 잡아당겨버렸다. 좌측 담장을 훌쩍 넘겨버린 나지완의 끝내기 솔로 홈런에 기아 선수들은 환희에 젖어 더그아웃을 뛰쳐나왔고 sk 선수들은 슬픔을 애써 삼키며 더그아웃 쪽으로 향했다.
09시즌 한국시리즈 7차전처럼, 단 한 경기만으로도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포츠다. 스포츠빠들은 보통 이 마약 같은 감정에 취해버려 스포츠 관람을 놓지 못한다. 이 감정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감정을 좀 있어 보이게 풀어보고 싶어서 호기롭게 도전한 책이 있다. 대학생 때 연계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매혹과 열광」이라는 책은 부제 그대로 인문학자의 스포츠 예찬을 담은 글이다. 직관적인 제목과 ‘한스 U. 굼브레히트’라는 저자 이름까지. 본새나기 그지없는 이 책을 언젠가는 꼭 읽어내고 마리라, 오래토록 결심했다. 결심만 했다. 한 세 번 정도 읽어보려고 시도했는데 모두 다 실패했다. 아쉽지도 않다. 진짜 너무 재미없거든.
「야구에도 3번의 기회가 있다는데」는 다르다. 똑같이 스포츠를 예찬하고 있지만 인문학자의 관점이 아닌 철저히 덕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고 아쉬운 점은 아쉽다고 말한다. 스포츠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저자 니시카와 미와는 비범한 문장가라고 소개된다. 그 소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별하지도 않는 단어들로 풀어낸 문장들은 특별할 것도 없는데 특별하게 다가온다. 어렵지 않게 만들어진 문장인데도 어느 하나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매혹과 열광」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아마 스포츠를 향한 저자의 덕심이 그대로 묻어나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스포츠를 볼 때 좀 과몰입해서 보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없지 않아 있는 게 아니라 과몰입이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144경기를 치르는 야구를 보며 365일 중 144일을 과몰입하고 144일 동안에는 단 하루도 일희일비를 안 하고 넘어간 적이 없다. 승패에 연연하고 1구1구에 집착한다. 안타 하나에 뛸 듯이 기쁘다가도 실책 하나에 야구장을 다 찢어버리고 싶다. 혹시나 타이틀이라도 걸려있는 때면 아주 미치고 환장한다. 그래봤자 내가 타이틀 홀더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이 저자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승패가 명확하게 갈리는 것이 스포츠의 정해진 운명이라서, 스포츠는 언제나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슬픔을 동시에 품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의 목표는 언제나 승리일 수밖에 없어서. 승리와 패배는 항상 같이 따라가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승리만을 취한다. 패배의 아픔은 지우고 승리의 쾌락만을 좇는다. 저자는 스포츠처돌이로서 이 점이 매우 아쉬웠던 것 같다. 스포츠는 승리하지 않더라고 사랑할 가치가 충분한 존재임을 뛰어난 글빨로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이 사랑스러운 스포츠를 많은 이들에게 영업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적어도 카프의 문제에서만큼은 그게 마음대로 안 됐던 모양이다.
보아하니 저자도 꽤나 진지한 야빠인듯 싶다. 다른 종목에서는 볼 수 없는 감정이, 그러니까 저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담겨있는 글이면 죄다 저자의 응원팀인 히로시마 토요카프를 향하고 있다. “한신이 안 져주잖아요!” 라는 그 한마디에 공감 못할 야빠가 어디 있을까. 스포츠에서 패배는 당연한 것임을 아무리 이해하고 있더라도. 그럼에도 야구를 보면 화가 나는 것이다. 야빠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우리 팀을 노골적으로 사랑하는 선수에겐 똑같이 노골적인 사랑을 뿜어내준다. 히로시마 선수가 아니더라도 아주 오래토록 고독하리만큼 괴로운 시간을 견디고 견뎌서 기록을 쌓아올린 선수는 존경해 마지않는다. 괴물의 존재에는 가타부타 말없이 그냥 기대하고 설레기만 한다. “어차피 질 거야.”라고 말하면서고 속으로는 “에이, 그래도 설마.”를 외치며 승리를 바라고 있다. 패배를 예상했으면서 막상 패배를 마주하면 또 화가 난다. “왜 예상 밖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잘 하고 있으면 마음이 마냥 고요한 것도 아니다. “이놈들이 그럴 놈들이 아닌데... 불안하게 왜 이러냐...” ......야빠란 한국이든 일본이든 다 똑같나 보다.
저자의 히로시마 덕심에 나도 모르는 새 물들었는지 책장의 끝을 덮을 때면 “카프! 카프!”를 외치고 있다. 팀 컬러가 빨간색이라는 말에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마저 생겨버렸다. 나중에 npb(일본프로야구)에 눈을 뜨게 되어서 새로운 뉴비 생활을 하게 된다면 아마 카프를 응원할 것만 같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야구를 벗어나게 되면 저자는 다시 진정하는 편이다. 앞서 말했듯, 저자는 스포츠에서 승리가 아닌 것 역시 의미는 있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포츠는 승패로만 갈리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스포츠가 의미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기더라도, 지더라도 이놈의 스포츠를 끊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단순히 게임 그 자체의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겠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난 그 무언가가 땀 흘리며 노력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선수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올림픽과 관련하여 많은 글을 썼는데 아마 스포츠의 의미를 설명하기 가장 적합한 예시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올림픽에 가는 건 정말 어렵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를 위해 선수들은 그 4년에 맞춰 몸을 준비한다. 선발전이 있는 해에 컨디션 이상이라도 생기면 4년을 준비한 올림픽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기도 한다. 선발전을 치르기 위해서는 그전부터 차곡차곡 기록을 만들어놔야 한다. 아무것도 없이 다짜고짜 선발전에 출전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4년 내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해서 성적을 만들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선수만이 올림픽행 티켓을 따 낼 수 있는 것이다.
힘들게 올림픽에 가서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쏟아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짧으면 하루, 길면 2-3주가 전부이다.
체조 도마를 설명할 때 흔히 이런 말을 한다. ‘4초를 위한 4년.’ 도마 선수들은 올림픽을 바라보며 1초에 1년씩 준비를 하는 것이다. 1초에 1년이라는 감당도 안 되는 시간을 뚫어낸 여서정 신재환은 세계무대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유도에는 한판승이 있다. 4분의 시간제한이 있더라도 내가 절반으로 점수를 앞서고 있다 하더라도 한판 판정이 난다면 경기는 그걸로 끝이다. 머리를 밀면서까지 올림픽 무대가 간절했던 강유정은 한판 앞에서 도전을 끝마쳐야만 했다.
욕 많이 먹었던 야구 대표팀은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다시 서기까지 13년을 기다렸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야구는 정식 종목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도쿄 올림픽이 끝나고는 또다시 정식 종목에서 제외된다. 2주가량 시합을 치르고 야구 대표팀은 기약 없는 올림픽을 기다린다. 언제 야구가 정식 종목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약 3주간의 치열한 시합을 거쳐 세계 4위라는 값진 성적을 손에 쥔 배구 대표팀은 그 3주를 위해 4년을 쏟아부었다. 4년 동안 여러 어려움이 닥쳤어도 끝까지 힘을 내 올림픽 티켓을 따 냈다. 그리고 또다시 끝없는 훈련에 돌입했다. 도쿄에 남을 수 있는 한, 가장 오랜 시간 남아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가 이처럼 오랜 시간을 견디고 버텼다. 그 고된 시간을 거쳐 승리를 따낸 선수에게는 손바닥이 나갈 듯이 박수를 보낸다. 그냥 방구석에서 보기만 했을 뿐인데. 같이 시합을 본 것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승리의 기쁨을 우리에게까지 전해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같이 승리를 만끽하는 의미에서 박수를 보낸다. 패배한 선수에게도 똑같이 박수를 보낸다. 선수도 사람인데, 아마 아쉬움도 괴로움도 선수 본인이 가장 많이 느낄 것이다. 그 아쉬움과 괴로움을 느끼는 선수의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선수를 따라 울면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승패가 멋진 경기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땀 흘려 정정당당히 승부에 임하는 선수의 모습이 멋진 경기를 만드는 것이다. (야구는 열외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난 야빠니까 조금의 쉴드라도 쳐 주고 싶다.)
스포츠 처돌이인 저자의 모든 글에는 이러한 절절한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가상한 노력을 놓지 않는 플레이어에게 박수를 보내고. 고독과 기록을 맞바꾼 스타에게 경의를 표하고. 아직 여름이 있는 근사한 청춘에게 환호하고. 세월에 무릎을 꿇어버린 노장의 패배에 감동하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괴물에게 가슴이 뜨거워지고.
저자는 책장 하나하나 정말 꼼꼼하게도 애정을 밀어 넣었다. 책장을 넘기는 게 아까울 정도로 그득그득 들러붙은 애정에 감탄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애정이 응집되어 있음에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이렇게나 스포츠를 사랑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는 글은 처음 봤다. 그 처음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아마 스포츠를 좋아하는, 그 스포츠의 선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 통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