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낯가리는 건 이제 그만 해볼까봐

by 와루


20210722


마이크 브라운,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우주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우주란 공포의 공간이다. 아무 소리도 없이 그저 캄캄하기만 한 우주가 무섭다. 감히 겪어 볼 수도 없는 억겁의 시간을 지난 우주가 두렵다. 나도 모르는 새 갑자기 일어나는 우주적 현상 때문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까봐 겁이 난다. 누가 공짜로 우주여행을 보내준다고 해도 정중히 사양할 것이다. 난 우주가 궁금하지 않으니까. 막막할 정도로 어두운 곳에서 창백한 푸른 점을 보는 것에 관심이 없으니까.


우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전적으로 공포 때문이다. 우주란 알 수 없는 공간이어서 무서운 건데 혹시나 그 미지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다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아버리기라도 한다면? 모르는 게 약이라고. 차라리 캄캄해서 무서운 곳이 낫지, 뭔가 이상한 것들이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라면? 그리고 그 존재를 알아버리게 된다면? 나는 그게 더 무섭다. 그래서 알고 싶지 않다. 모르는 채로 살고 싶다. infp라서 지나친 상상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래서 남들이 보면 웃기겠지만, 나는 진지하다.


명왕성이 행성이건 아니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명왕성 그 뒤로 행성이 더 있건 말건 그것 역시 내 알 바가 아니다. 태양계 행성이 8개이건 9개이건 10개이건, 하다못해 지금 당장 280만개가 추가된다고 하더라도 내 알 바가 아니다. 이제껏 살면서 명왕성이 궁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뭐, 행성처럼 보였으니까 행성이었겠지. 퇴출될 만 하니까 퇴출 됐겠지. 그냥 흘러갔던 대로 명왕성의 생애를 받아들여 왔다.


다 김겨울님 때문이다. 겨울님이 다짜고짜 파안대소를 하는 바람에 관심도 없었던 명왕성 퇴출 일대기를 내 돈 주고 사는 것도 모자라 읽어버리고 말았다.


어라, 근데 이 우주는 좀 재미있잖아?


아홉 번째 행성이었던 명왕성은 열 번째 행성을 찾으려는 행성 사냥꾼에 의해 퇴출되었다. 행성을 찾으려는 사람이 행성을 퇴출시켰다? 뭔가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하지만 빠가 까가 된다고, 뭔가를 깊이 파헤치던 사람일수록 그 속의 잘못된 부분도 잘 알고 있는 법이다. 마이크 브라운도 그랬다. 새로운 행성을 찾고 싶었지만 그가 발견한 천체들은 명왕성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행성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천체들이었다. 과학적 감추기를 택했더라면 마이크는 아마 열 번째 행성의 발견자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 국제천문연맹 위원회에서도 그런 결정을 내리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과학적 엄격함을 선택했다. 아마 학자로서의 용납할 수없는 양심 때문이었을 테다. 학자라면 응당 학문에 진실해야 하니, 그에게는 ‘행성 발견자’라는 명성보다는 행성의 정확한 정의와 그로 인해 새롭게 정립될 천체들의 지위가 더 중요했다.


이렇게만 보면 참 재미없는 스토리다. 어렵고 복잡한 우주 이야기처럼 보인다. 평소에 관심이 없던 주제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이 책이 재미있는 건 순전히 저자의 글빨 때문이다.


이과적 말하기가 이렇게나 재미있을 수 있다니. 타이핑 된 글로도 이렇게 웃긴다면 마이크와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분명 입꼬리가 내려올 날이 없을 거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이익준의 천문학자st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웃긴 사람이 글을 쓰면 어렵고 복잡하고 관심 없던 우주 이야기마저 재미있어진다.


명왕성이 퇴출된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명왕성을 퇴출시키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마이크는 정말 스펙터클한 시간을 보낸 끝에 명왕성을 행성의 지위에서 쫓아낼 수 있었다. 명왕성의 인기는 왜 이리도 많아서 퇴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바다만큼 있는 건지, 명왕성이 행성이 아니면 아닌 거지 그걸 왜 특별 취급을 해주려는 건지, 그 와중에 다 같이 고생하는 학자이면서 남이 발견한 별은 왜 훔치려 하는 건지, 뭔가 언제나 똑똑하고 합리적인 결정만 내릴 것 같던 과학자집단에서 발생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숱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는 기어코 명왕성을 행성의 지위에서 박탈시켰다. 그게 과학적으로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연구하는 학자 마이크의 신념이 관철된 것이다.


마이크는 이 모든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말이다. 이 책이 따분하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마이크의 뛰어난 묘사력이 한 몫 한다. 마이크는 장면을 마치 정밀화로 그려내듯이 묘사한다. 사실 일반인이 천문학자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천문학자가 쓰는 망원경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들이 태반일 텐데.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글을 쓰려면 자세한 묘사는 필수다. 하지만 말이 길어질수록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알기 쉬운 설명을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상황을 나열하고 장면을 늘어놓다보면 어느새 중언부언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사람들은 금방 지루함을 느끼고 책장을 덮어버린다. 하지만 마이크의 묘사는 다르다. 분명 엄청나게 긴 설명인데도 그저 문장을 따라 눈을 움직이면 이미 이에 대한 이해가 완료된 상황이다. 그 덕에 마이크가 보낸 그 장황한 시간이 독자에겐 하나도 장황하지 않다. 그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재미있을 뿐이다.


마이크는 연구하는 학자 외에도 가르치는 교수, 다이앤의 남편, 육아하는 아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가르치는 교수일 때도, 다이앤의 남편일 때도, 육아하는 아빠일 때도 마찬가지로 웃기다. 그냥 좀 많이 웃기다. 왜 이렇게 웃긴지 모르겠다. 내 유머 코드가 이런 데에 반응할 줄은 나도 몰랐다. 특히 자신의 본업이 아닌 일을 할 때, 그러니까 다이앤의 남편일 때라든가 육아하는 아빠 모드일 때 가장 많이 실소를 터뜨렸다. 항상 정확한 답을 내고 싶어 하는 이과가 언제나 정확할 수만은 없는 사랑과 육아를 하게 되면서 맞닥뜨리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면서, 그 상황을 어떻게든 이과적으로 타개하는 모습이 참 마이크스럽게 웃기다.


마이크는 언제나 유머러스하다. 그렇다고 마이크가 가벼운 사람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본업을 할 때만큼은 매우 진중한 사람이 된다. 별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갑자기 빠져버린 매너리즘에 깊은 고뇌를 하고. 오랜 시간을 전념한 끝에 발견한 별에게 딱 맞는 이름을 지어주고. 일순간에 별을 빼앗겨버릴 수도 있는 순간에서조차 별도둑에게 예의를 지키고. 모두 천문학을 아주 많이 사랑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업으로 삼은 천문학에서조차 가벼운 사람이었다면 절대 견디지 않았을 순간들이다. 이토록 천문학에 진지하기에, 이제는 ‘한물간 일’이 되어버린 별 사냥에 마이크는 아직도 몰두하는 것이다.


“새로운 별을 발견했다.”


과연 무슨 느낌일까. 내가 천문학자가 되지 않는 이상에야, 이 감정은 절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천문학자라고 다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별을 찾아 나서는 일은 이제 대세가 아닌 것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천문학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유행이 지나버린 일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마이크 정도나 되어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아주 작게나마 그 신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오래 전에 숨겨놓은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별을 발견한 그 순간의 설렘이 전해졌다. 그 감정 덕에 캄캄한 우주가 잠시 동안은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웠다.


아직 우주와 완전히 친해진 것은 아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극한의 낯가림이 단 한순간에 해제될 리는 만무하니까. 하지만 손끝 정도는 내밀어보려 한다. 어느 날 무심결에 또 다가올 지도 모르는 우주에 더 이상은 겁먹지 않기 위해. 손끝을 시작으로 악수까지 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앞으로 다가올 우주는 밀어내지 않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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