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3씀
가을이 이렇게나 짧았나.
장장 반년, 144경기를 달려서 쟁취해낸 포스트시즌 티켓이었는데. 단 하루, 아니 3시간 만에 끝나버렸다. 가을이 이토록 짧아지다니 이건 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라고 하기엔 아무 변명이 되지 않는단 걸 알지만, 이따위 변명이라도 하지 않으면 쓰린 속을 달랠 길이 없다.
애초에 이길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사방에서 컨디션이 어떻다느니, 최초의 업셋이 가능하다느니, 별의별 설레발을 다 떨었어도 나의 생각은 굳건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고, 무조건 우리가 질 거라고.
그치만 이렇게 허무한 패배를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지더라도 후회 없는 경기를 하길 바랐다. 패배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지는 걸 보길 바랐다. 16와카때처럼 정말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경기력을 바랐다.
바람과 달리 22와카는 너무나도 비참했다.
어디서부터가 패착이었을까. 8회 불펜으로 이의리를 낸 거? 찬스때마다 걸리는 이창진 타석에 대타를 안 쓴 거? 4회 2사 만루에서 황대인이 똑같은 코스에 연속으로 헛스윙해서 삼진 당한 거? 3회 나성범이 어이없는 실책으로 1점 헌납한 거? 아쉬운 순간을 꼽으려면 너무나도 많아서 꼽을 수도 없을 지경이다. 어쩌면 감독이 김종국인 것부터 꼬인 걸 수도 있다. 한숨만 절로 나온다.
그저 수준 차이를 확실히 느낀 경기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5위와 4위의 간극이 극심하게 벌어졌는지, 왜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진 건지, 이 경기 하나로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 감독은 거는 작전 종종 성공했고, 믿는 투수 족족 아웃을 만들었지만 우린 아니었다. 전략이랄 것도, 작전이랄 것도 없는 와중에 믿기엔 불안한 선수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제 믿음이 시즌 내내 어떤 독으로 작용했는지 똑똑히 봐왔음에도 감독은 끝까지 믿었다. 정말 믿어야만 했기에 믿었던 선수는 발등을 제대로 찍었다. 홈런 치고 득점 좀 만들어달라고 데려온 선수였는데, 득점은커녕 시즌 내내 잘 하지도 않던 수비 실책을 범하면서 초반 분위기를 완전히 상대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그 장면은 아직도 충격이 크다. 수비 폭탄이 터진다면 박찬호의 어이없는 송구나, 황대인의 되도 않는 포구에서 나올 줄 알았지 그게 나성범에게서 터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젊은 선수들에게 긴장하지 말랬으면서 정작 본인이 제일 긴장을 하신 모양이다.
그 와중에도 박찬호, 류지혁의 활약은 빛이 났다. 그 빛을 우리만 본 게 아쉬울 정도로 둘은 반짝거렸다. 박찬호는 3안타를 만들어내고, 또 루상에 나갈 때마다 도루를 감행했다. 상대 배터리를 흔들고 팀의 공격을 활발하게 이어주려 갖은 애를 썼다. 류지혁은 확실히 가을의 경험이 익숙해서 그런지 누구보다 여유 있어 보였다. 급하지 않았고 본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그에 맞게 적절한 타격을 선보였다.
투수진도 나쁘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실점은 있었지만 놀린과 파노니의 모습도 괜찮았고 전상현과 이준영도 무실점으로 7회를 막아냈으니 그들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했다고 본다. 이의리의 불펜 등판은... 그냥 없던 일로 하자. 경기는 7회까지만 했던 걸로 하자.
사실 여기서도 감독의 역량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포스트시즌과 같이 단기전일수록 투수 운용은 한 두박자 더 빨라야 하고, 과감해야 하며, 정확해야 한다. 오늘의 경기에선 정확도에 문제가 있었다. 8회에 왜 이의리였을까. 우리가 필승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시즌 내내 거의 선발로만 뛰었던, 단 한 번 있었던 불펜 등판 기록도 썩 좋지 않았던, 게다가 상대 전적은 기절할 정도로 나빴던 이의리를 그 순간에 대체 왜 올렸던 걸까. 데이터를 봤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등판이었고, 혹 데이터를 안 봤다면 그건 감독 코치진들의 직무유기다.
경기가 끝나고 감독의 인터뷰를 보았다. 본인이 미흡했다고 말하는 게 왜 이렇게 미운지.
미흡한 감독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실망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미흡해도 너무 미흡했다. 1년차라고 쉴드 치기엔 본인이 그토록 말하던 1년차의 간절함이 없어 보여서 쉴드 치고 싶지가 않다. 오늘 김종국이 한 건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전이 아니었다. 그저 페넌트레이스 가장 마지막 145번째 경기일 뿐이었다. 본인이 미흡한 걸 알았다면 포스트시즌을 이렇게 준비해선 안 됐다. 적어도 그 동안 해왔던 것과는 다르게 준비했어야 했다. 똑같은 준비와 똑같은 과정으로는 똑같은 결과만 따르게 된다. 타자가 안 맞는다면 과감한 작전을 걸 줄도 알아야 하고, 빠르게 대타 카드를 교체할 줄도 알아야 한다. 투수가 흔들리고 있으면 올라가서 흐름을 끊어줄 줄도 알아야 하고, 되도 않는 항의라 할지라도 적어도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한 번쯤은 해볼 수도 있어야 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뭐라도 했어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멀뚱멀뚱 있을 거라면 그 자리에 돈 받고 서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팀은 한 시즌 내내 늘 매번 이래왔다. 타자가 타격사이클 바닥을 찍든 말든, 투수가 마운드에서 똥을 싸든 말든 감독은 언제나 아무것도 안 했다. 오늘 또한 우리팀 감독은 아무것도 안 했다. 144경기 내내 그랬듯 똑같았다. 그 결과, 똑같이 졌다.
속상하다.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질 경기는 아니었는데. 적어도 대등하게 싸워 볼 여지는 충분했는데. 이렇게 끝나버린 우리의 가을이 너무 허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