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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귀를 지나간 왕자

누가복음 18장 18~27절

by 한솔

이전 글에서 다룬 누가복음 18장 18~27절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짧은 동화를 나누려 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우리 가족만의 재미 요소도 녹여 넣었는데 이를테면, 우리가 사는 동네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왕국의 이름을 만들고, 아들 도윤이 도하 이름을 조합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지어보는 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성경의 가르침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에 있다. 이 짧은 동화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옛날, 시르부니아 왕국에는 다이온 이라는 젊은 왕자가 살고 있었어요. 그는 용맹하고 지혜로웠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부와 능력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금으로 장식된 갑옷을 입고, 값비싼 말을 타고, 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나 다이온은 너희를 다스릴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왕궁에서 가장 현명한 자로 불리는 서기관 도헤르는 다이온에게 늘 이렇게 말했지요.


"진정한 왕이 되려면 바늘귀 성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다이온 왕자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어요.


"나는 이미 위대한 왕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문이 뭐라고 특별한 자격인양 요구한단 말인가?"


도헤르는 단호했어요.


"그 문을 직접 통과해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오직 진정한 왕만이 그 문을 지나갈 수 있지요."


다이온 왕자는 내심 신경이 쓰였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선언했어요.


"좋다! 내가 바늘귀 성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증명하겠다!"




바늘귀 성문은 왕국의 서쪽 끝, 황금 언덕 너머에 있었어요. 다이온 왕자가 도착해서 그 문을 본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문이 터무니없이 작았기 때문이에요! 높이는 그의 허리쯤밖에 되지 않았고, 폭은 겨우 어린아이가 지나갈 정도였지요. 그는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어요. 금으로 장식된 눈부신 갑옷, 허리에 찬 값비싼 검, 등 뒤로 두른 화려한 금색 망토, 그리고 황금과 보석이 가득 찬 가방까지. 그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어요.


‘이 차림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겠군. 어쩔 수 없지… 갑옷을 벗어야겠어.'


그는 조심스럽게 갑옷을 벗어 내려놓았어요. 그러나 여전히 문을 통과할 수는 없었죠.


"망토도 벗어야 하나?"


다이온 왕자는 망토를 벗고, 칼까지 내려놓았어요. 그러나 바늘귀 성문은 여전히 너무 작았지요.


"아, 이 가방이 걸리는구나!"


이 깨달음이 든 순간, 왕자의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문을 통과한 뒤 손을 뻗어 가져올 수 있는 건 칼뿐인가? 하지만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 모든 걸 버리고 간다고? 빈손으로 간다면… 나는 왕이 될 자격이 없는 것 아닐까?"


그러자 문 너머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당신이 '가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가 당신을 왕으로 만드는 것이오."


다이온은 멈춰 서서 작은 문 너머를 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대신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이 들은 말을 되새겼지요. 한참을 고민한 다이온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았어요. 몸에는 최소한의 옷만 가볍게 걸치고, 마음은 겸손함과 용감함으로 무겁게 채웠어요. 마침내 다이온은 몸을 숙여 바늘귀 성문을 기어들어 갔답니다.




바늘귀 성문을 지나자, 다이온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어요. 그 너머에는 그동안 시르부니아 왕궁에서 보지 못한 크고 아름다운 성이 서 있었고, 모든 백성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곳에는 왕인 아버지와 함께, 제국의 위대한 통치자, 재르콘 황제가 함께 서 있었어요. 황제의 눈빛은 다이온을 깊이 꿰뚫어 보는 듯했지요. 황제는 다이온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어요.


"잘 왔다, 다이온. 이제 너는 진짜 왕이 될 준비가 되었구나."


그 순간, 다이온은 깨달았어요. 눈부신 갑옷, 값비싼 망토, 황금과 보석이 자신을 왕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음을 말이에요. 그가 진짜 왕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히 문을 통과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날 이후, 시르부니아 왕국은 가장 지혜롭고 선한 왕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Q&A

당신은 지금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나요? 그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나요?

당신은 지금 어떤 사람인가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나요?



2025년 3월 10일, 바늘귀 문 앞에서 나눈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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