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꼴보다 못한 우리 꼴
아이들 방학식으로부터 약 20일이 지났다. 그 사이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혼자 두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생일날의 꿀 같은 자유시간덕에 숨을 쉬었고, 3일 동안 친정집에 머물며 엄마가 해주시는 밥과 조카바보 동생 덕도 보았다. 매일 평일 아침에 줌으로 만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들은 것도 꽤나 큰 에너지가 되었다.
어쨌거나 방학은 방학이라 나의 하루하루는 상당 부분 두 아들에게 초점을 맞춘 채 지냈다. 학령기를 앞둔 도윤이와 형을 제법 따라잡은 도하에게 규칙적인 습관이나, 충분한 바깥놀이, 권장되는 다채로운 경험을 해주고자 무던히 애쓰곤 했다. 컨디션 봐가며 느긋하게 지냈으니 어떤 이에게는 심심한 20일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지나치게 느껴져 "집안일 팽개칠 좋은 핑계"이고 때로는 "나가서 돈 쓰면 편하니 엄마 좋자고 하는 짓들"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후자의 생각이 고개를 들 때면 남편의 비난이 날카롭게 꽂힌다. 아이들이 원에 간 후 하던 일들이 다 뒷전이 되는 방학과 같은 시기엔 더하다. 두 아들을 향한 나의 고민과 노력이 '비효율적인 짓'으로 치부될 때, 나는 그저 살림 하나 제대로 못하는 얄미운 헛똑똑이가 되어버린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남편에게는 어지러운 집안 꼴이 내 모든 노력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기준이 되는 것만 같다.
쩍쩍 갈라진 마음에 단비처럼 스며드는 칭찬은 주로 핸드폰 화면에서 만난다. "넌 진짜 탁월한 사람이야" "애들 그렇게 키우기 쉽지 않은 거 알 사람들은 다 알아요" 닳을까 캡처해 둔 말들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알아봐 주고, 우리 집 꼴을 당연하다 할 분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이다. 남편에게서는 듣지 못하는 말이라는 점이 참 쓰라리다. 오히려 남편에게는 나의 이 '행복'이 또 다른 억울함의 이유가 된다.
악순환임을 알면서도, 나는 논쟁 중 대부분 침묵을 선택한다. 평화를 지키려 침묵했다지만 그것이 본질적 문제라며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내 말을 경청해 줄 것이라 믿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화를 요청하고 싶지만, 바람과 행동의 간극이 크다. 결국 침묵이 속 편하다는 유혹에 빠진다.
나는 그저 나를 알리고 싶고, 내 선택의 이유가 무언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말하고 싶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방어 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얘기할 수 있을까? 결국 당신은 당신의 방식과 기준으로 설득하려고만 하진 않을까? 상대의 바람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인정할까?
결국 켜켜이 쌓아둔 불쾌함은 불이 되고 고성이 되어 서로의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만든다. 불쾌할 때야말로 침묵했어야 했는데... 날카로운 말들이야말로 듣는 족족 삼켰어야지. 지혜롭지 못한 침묵과 언행들로 모든 것은 도돌이표다.
부모의 싸움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는 아이들의 자책과 눈물 때문에라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으랴. 이따위 모습을 보이는데 아이들을 위한다는 수많은 노력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이 지긋지긋한 도돌이표를 끊어내야만 한다. 더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는 나아갈 수 없다. 나는 당신과 같은 편이고 싶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정신없는 방학도, 어지러운 집안도,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될 수 없다.
문제는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것뿐이다.
25.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