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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괜찮다

그리고 더욱 괜찮아질 것이다

by 한솔

난 괜찮다.


아침에 눈을 뜨면 두 아들의 등원으로 정신이 없고, 두 아이가 등원을 하고 나면 귀여운 학생들을 떠올리며 수업 준비에 빠져든다. 하반기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이 시작되고, 준비하던 일들도 본격화되면 시간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당장 오늘 치워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집안일들까지 휘몰아치고 나면 나는 오히려 더욱 괜찮아진다.


그렇게 괜찮은 것 같은 하루를 보낸다. 내 삶의 근간이 되는 수많은 질문들에 답하는 것을 보류하고 언제든 피할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해 버려도, 괜찮은 하루인 것만 같다. 나의 일상은 여전히 바쁘고, 식구들은 나를 필요로 하며, 해야 할 일들은 차고 넘친다.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문제들이 날 좀 보라며 아우성치지만 나는 그저 등을 돌린 채 괜찮다 말한다.




나는 괜찮지 않다.


등원차를 기다리며 "엄마, 나 불안해. 엄마가 벌써 보고 싶어. 여기가 답답해.."라는 첫째 아들과 3초 숨을 들이쉬고 3초 숨을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꼭 안아 기도해 주었다. 아이를 보내고 돌아서던 괜찮던 나는 이내 괜찮지 않아진다. 평소 22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던 내가 어쩐지 힘이 빠져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숨을 깊게 들이켜도 가슴이 꽉 막힌 듯한 그 기분을 엄마도 알지. 오늘도 친정 식구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메시지를 보내볼까 말까 망설이다 이내 포기한다. 말하지 못한 수많은 문장들이 나를 붙잡고 있다. 집에 돌아와 주방을 치우고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다시 나아지나 싶지만, 쉽게 괜찮아지지 않는다. 배설하듯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좀 나아지려나 싶어 주절주절 써내려본다.


최근 나의 불안과 긴장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문제는 원가정으로부터 기인한다. 내 선택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주어진 것들은 참 어렵다. 내 것이 아니라 말할 수도 없고, 내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이해와 긍휼, 상처와 원망 속에서 나는 여전히 길을 찾고 있다.


나나 잘하자. 거울 삼아 나를 돌아보고 내가 나아지고 내가 나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내가 더욱 괜찮은 사람이 된다면 충분하다 다독인다. 지금의 모든 문제들도, 고민들도 모두 귀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삶의 가장자리부터 곱게 썩어 내 전체를 이롭게 할 것이다. 내가 나의 부모 나이가 되어 오늘을 그릴 때, 그것이 참이라고 끄덕인다면 좋겠다. 모두에게, 그리고 하늘에 감사하며 그런다면 좋겠다.


그러니까, 난 괜찮다.



2025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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