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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을 믿는 기독교인

들은 다 숨어있는 듯

by 한솔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진화론을 믿는다. 아니, 진화생물학의 수용이 복음 신앙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과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제시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수용하고 신뢰하는 것이,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보통의 한국교회에서 침묵을 유지한다. 창조과학회의 특정한 해석을 지지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그랜드 캐니언에서 비주류적 주장을 듣고자 하는 분들 앞에서 나는 너무 쉽게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되곤 한다. 아니, 차라리 그 정도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단적이거나 비성경적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반발심일까, 억울함일까.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한국 교회에 지배적인 근본주의와 보수주의 흐름의 산물로 규정하곤 했다. 때로는 그분들의 주장에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고,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는 '지성의 결여'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점차 깨닫고 있다. 다양성과 토론의 자유가 부족한 한국 사회 안에서도, 교회 공동체는 유난히 경직되어 있지 않은가?

감히 진화론을 논해? 창조론을 믿어야지!

이렇게 강요되는 '믿음'은 어쩌면 회피와 침묵을 강요하는 권위가 낳은 열매는 아닐까 하는 발칙한 의문이 든다. 절제나 인내, 순종과 같은 덕목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 미덕들이 성령의 열매가 아닌, 권위주의적 '힘의 논리'로 적용되어 건강한 비판과 탐구를 억압하는 도구가 된 것은 아닐까?


악하고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과 그분의 청지기들 앞에 순종하며 배우는 것은 필수적인 자세이다. 그러나 그 순종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청지기들이 먼저 겸손과 포용력을 갖추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교회에서 생명의 진화에 대해 자유롭고 깊이 있게 논할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를 꿈꾼다. 그 꿈을 위해 아이들이 순종하는 대상인 내가 먼저 할 일이 있다. 겸손한 청지기로서 품고 탐구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믿든, 하나님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탐구하든, 호모 데우스의 질문에 답하든—아이들의 호기심을 존중하며 따라갈 생각이다. 적어도 2025년을 사는 우리는 그렇게 진화하며 임마누엘을 경험해도 괜찮을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두 아들과 함께 진화의 신비에 대한 책을 펼친다. 성경의 특별 계시뿐 아니라 자연 만물의 일반 계시 속에도 하나님의 진리가 담겨 있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2025년 10월 14일,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라는 책에 쓰인 이정모 관장님의 추천글에는 "나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벗어났다."라고 쓰여 있다. 참 나를 오래 머물게 했던 그 문장이, 이 글을 쓰는 내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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