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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필수 아이템은 분신술

번호표라도 좀...

by 느닷

8시 30분.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자마자 특수반 선생님이 도서관을 방문하셨다.

"학교 규칙에 관한 그림책 좀 찾아주세요~"

"네~"

그림책을 두어권 찾아 대출을 하는 중에 2학년 담임선생님의 메신저가 날아들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관한 책으로 두 반 분량이 필요한데 도와주세요~"

"50권 정도면 될까요? 이건 시간이 좀 걸려요, 언제까지 필요하세요?"

메신저에 답장을 적고 있는데 5학년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울렸다.

"시조 공모전 출품작을 모아놓은 책이 있을까요?"

"음… 있었던 것 같은데요~ 한번 찾아봐야… 잠깐만요."

전화 통화중에 6학년 담임선생님이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선다.

"지난주에 안내해 주셨던 독후감대회를 학생들에게 권해 보려는데 지정도서가 여기 있나요?"

"있긴 한데, 지금 두권은 대출중이구요…"

대화중에 3학년 담임 선생님의 메신저가 도착했다.

"지난달 학급문고 대출목록 파일 좀 보내주세요~"

메시지를 열어보지도 못했는데 4학년 담임 선생님의 다음 메시지가 쌓인다.

"국어사전 몇 권까지 대출 가능한가요?"

지금 남아있는게 몇권이더라… 기억이 미처 소환되기도 전에 갑자기 학부모님이 눈앞에 나타났다.

"선생님 오늘 학부모 독서교육 9시 50분부터 맞죠~? 장소는 어디인가요?"

"아 네! 맞아요! 어… 엄청 일찍 오셨네요…"

시계를 힐끔 보는데 도서 납품 업체 사장님의 전화가 왔다.

"사서 선생님~ 오늘 오전중에 신간도서 도착할겁니다."


가끔 이런 날이 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 들지만 산산히 흩어지는 정신을 바짝 부여잡아야 한다. 곧 수업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들이닥칠 것이고 그들의 질문 공세 틈에서 독서교육과 신간 검수라는 일관성 없는 업무를 일관성 있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의 민원은 늘 불시에 다양하게 들이닥친다. 도통 업무에 연속성이라고는 없다. 배구의 시간차 공격 기술이라도 전파해야 하나… 혼자 중얼거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대기번호표 발급기계의 가격을 검색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조용히 주문을 외운다.

'요리조리 얄라숑 수리수리 분신수울~!!!!’


초등학교 도서관의 시간은 파도같다. 업무가 밀물처럼 막무가내로 쏟아질땐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다. 그러다 어느순간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깊은 바다속 같은 고요함에 정신을 차린다. 그제서야 어금니를 너무 세게 물고 있었다는걸 알아챈다. 나는 어느새 거북이처럼 되어버린 거북목과 욱신거리는 손목을 주무르며 턱관절을 이완시켜 본다. 언젠가는 능숙한 서퍼처럼 여유롭게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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