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새 학기 봄날의 '도서관이용자 교육' 첫날.
아직 혀 짧은 소리로 인사를 하는 삐약이들이 잔뜩 긴장한 채로 딱딱한 도서관 의자에 모여 앉았다.
"1인당 3권까지 빌려갈 수 있고, 일곱 밤 동안 책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요. 자 지금부터 대출을 해 볼게요~"
"음.... 선생님... 저기... "
"괜찮아요~ 뭐든 물어보세요~"
왼쪽 엄지손톱을 야금야금 물어뜯던 남학생이 불안한 눈동자를 올려 뜨며 조심스레 물었다.
"돈이 없어서요..."
"응?! 뭐라고!?"
"책 빌리는 거 얼마예요? 저 오늘 돈을 안 가져와서..."
매년 한두 명은 꼭 하는 질문이다. 벌써 뼛속까지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8세 아동에게 무료라는 대답을 해주면 그제야 아이는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다시 깜짝 놀란 눈으로 질문한다.
"와! 선생님 엄청 부자인가 봐요?!"
도서관은 부자와 빈자 모두에게 평등하게 정보의 접근을 허락하는 거의 유일한 장소이다. 전자책, 종이책, 잡지, 신문, DVD, 메이커스공간, 각종 무료강연,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등이 1학년 학생의 자본주의적 편견을 깨고 모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곳. 도서관. 이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처음으로 가르쳐 주는 곳이 초등학교 도서관이다.
지금이야 도서관 무료이용이 너무 당연해서 피식 웃음이 나올 이야기이지만 사실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소액이었지만 도서관 입장료라는 것이 있었다. 폐가식으로(사서만 서가에 접근할 수 있는 형태) 운영되는 도서관도 제법 있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책이라는 것은 양반과 왕족의 전유물인 때도 있었다. 아랫것들은 감히 글을 배우는 것이 허락되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 백성들의 삶은 공공연히 천한곳에 위치했다. 그러니 오랜 세월 힘들게 일궈낸 도서관의 공공성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빅데이터의 존재가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과도기적 시대의 한 가운데에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시대의 변화를 촘촘히 따라가며 적절히 변신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초등학교 도서관이라고 다르지 않다. 1인 관장이자 사서인 나는 답없는 숙제앞에서 생각의 꼬리를 물고 도서관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