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생에게 어른 책을 빌려줍니까?

ㅣ 어른이 학생들 책 보는건 괜찮구요?

by 느닷

도서관 서가에 진열된 책들은 모두 청구기호라는 것이 적힌 라벨이 책 등에 붙어있다. 청구기호는 사람으로 치면 집 주소 같은 것이다. 컴퓨터로 검색해서 고른 책이 어디 있는지 이 주소를 보고 찾을 수 있다. 혹은 대출되었다가 도서관으로 돌아올 때 어느 서가로 돌아가야 할지 이 청구기호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청구기호가 없으면 이 수많은 책들이 주제별로 정리가 되지 않아서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그리고 청구기호에는 별치기호라는 것이 포함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그림책들만 따로 모아놓고 청구기호에 '그림'이라는 별치기호를 적어 두는 것이다. 우리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별치기호는 사전 및 도감류를 표시하는 'R', 그림책을 표시하는 '그림', 팝업북을 모아놓은 '팝업' 어른용 책들만 따로 모아서 'T'라는 별치기호를 사용한다.


내가 처음 이 도서관에 왔을 때 어른용 도서 'T'는 학생 아이디로 대출이 되지 않게끔 전산으로 막혀 있었다. 원래 그렇게 되어 있기도 했고, 어른책이 별로 많지도 않았기에 첫 해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어른용 서가에도 좋은 책이 많이 쌓이기 시작했고 간혹 학생들이 어른용 도서 중 베스트셀러나 세계명작 도서를 빌리고 싶어 했다. '공부머리 독서법',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총, 균, 쇠', '코스모스' 등의 책이었다. 딱히 학생이 읽으면 안 되는 내용의 책은 아니었지만 과연 초등학생이 이 책을 이해하겠나? 싶은 합리적 의심이 잠시 고개를 빼들었다. 어차피 다 읽지도 못할 텐데 귀찮다는 생각도 슬쩍 들었다. 하지만 간절한 학생의 눈빛에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래 뭐 학생이 읽어서 해로운 내용은 아니니까~'

처음에는 몇몇 베스트셀러만 학생들의 대출을 허락했다.


5, 6학년 중에 도서관을 애용하는 학생은 드물다. 그 귀한 5, 6학년들 중 몇몇이 자신들의 높은 독서 수준을 뽐내고 싶어 했고 자주 어른 책을 읽으려고 했다. 사실 나도 아직 도전하지 못한 '총, 균, 쇠'를 이 녀석이 재미있었다며 반납할 때 정말 내용을 다 이해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였다.



'왜 학생은 어른책을 빌려가면 안 되는 것일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만한 이유가 없었다. 결국 나는 막혀있는 전산을 그냥 풀었다. 학생도 별치기호 'T' 책을 빌릴 수 있게 바꿨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어른 책이라 해 봐야 분기별, 장르별 베스트셀러이거나 고전소설, 교수학습법에 관한 책, 역사책 자녀양육에 관한 책 등이 대부분이다. 선정적이거나 불온한 사상을 전하는 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사서연수에서 어른용 도서의 대출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왜 학생에게 굳이 어른 책을 빌려줘야 하는 거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있었고, 어른책을 빌려 줬다가 학생의 부모님이 보시고는 왜 학생에게 어른 책을 빌려 줬냐는 항의성 민원전화를 받았다는 분도 있었다. 그 학생의 부모님은 무엇이 못마땅한 것이었을까? 자신의 아이가 감히 어른 책을 넘봤다는 사실? 아니면 학생이 어른책을 가져가는 것도 모르고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의심되는 사서에 대한 질타? 어느 쪽이든 염려스러웠다. 그리고 어떤 분은 굳~이 두꺼운 어른 책을 호기롭게 빌려간 학생을 기억했다가 책을 반납할 때 제대로 읽었는지 내용과 관련해서 확인 질문을 했다고 했다. 그 학생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그렇게 두 번을 검사했더니 그 뒤로는 어른 책을 빌려가지 않았다며 꿀팁을 전해 주셨다. 충격적이었다. 어른이 정한 규칙에 도전하는 아이에게 검열이라는 수단으로 응징을 하다니! 어른용 책을 탐내는 학생들의 태도에 대해 권위적인 자세로 반대하는 어른들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학생이 읽기에 부적절한 내용의 책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이유로 아이들의 독서력을 함부로 한계 짓는 것인지! 애당초 어른용 책이라는 경계도 우습다. 그림책, 역사책, 과학책, 소설책으로 나누는 것은 객관적으로 가능하지만 '어른책'은 대체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장르인가? 두꺼우면 어른책인가? 어려운 말이 많으면 어른 책인가? 학생용으로 출판된 정보전달 도서 중에도 어려운 말이 많이 들어간 두꺼운 책이 충분히 많다. 어른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베스트셀러 중에도 그림만 많고 얇은 책도 있다. 그러면 이것은 어린이 용 책이란 말인가?


어려운 책이든 쉬운 책이든 학생은 도서관에서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책을 고를 권리가 있다. 대출 후에 일부만 읽든 전혀 읽지 않든 그것은 전적으로 학생의 자유이다. 사서는 학생이 대출한 책의 내용을 다 이해했는지 검사하는 부정적 피드백을 결코 해서는 안된다. 학생이 대출이라는 행위를 뽐내기 위해서 하든, 호기심에 하든, 진지하게 읽고 싶어서 하든, 엄마나 동생에게 권해주고 싶어서 하든 학생의 자유의지에 달린 문제이며 어른이 대신 판단하는 것은 월권이다.


아... 사서의 검열에 마음이 꺾였을 아이를 생각하다 흥분했다. 내 짧은 식견은 이러하다고 내 공간에서 나마 소심하게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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